우리, 그만 만나자

by 금교준

“우리, 그만 만나자.”


십 년 전이었나, 연정이가 보낸 문자였다. 갑자기 왜 그 문자가 생각났는지는 미지수다. 가끔 아무 연유도 없이 툭-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것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당시 나는 그녀가 어지간히도 내게서 정을 떼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방식은 너무했다. 그동안 같이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문자로, 그것도 고작 일곱 글자로 관계를 정리하다니. 이런 건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뭐, 상대는 이미 이별하자고 단정 지었는데 사랑이라니, 어이가 없다.


연정이와는 놀이공원에서 만났다. 고등학생 때였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주변에서 너네 둘이 사귀는 거 아니지, 하고 놀렸던 친구와 간 거였다. (동성이었다. 그 애랑 나는 집 방향은 물론이고 당구장과 노래방 코스를 좋아하는 취향까지 똑 닮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붙어 다니곤 했다) 그 애는 요즘 썸이란 걸 타고 있다며 썸녀와 그녀의 친구를 데려왔다. 가장 뒤에 언급한 사람. 그녀가 연정이었다.


연정이는 내가 알던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우선 예뻤고, 키도 컸고, 성격도 털털했다. 결정적으로 샴푸 향이 났다. 나는 정반대였다. 피부는 푸석했고, 몸은 호리호리했고, 여자 앞에만 서면 아무 말도 못 했다. 언젠가 소개팅을 받았을 때 3시간 만에 차였으니까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놀이공원이었다. 현장체험학습 때나 갔던 놀이공원에서는 벤치에 마냥 앉아서 솜사탕을 뜯어먹는 기억만 있던 탓에 같이 다니기에는 다분히 재미없는 사람일 게 분명했다.


“쟤네는 지들끼리 놀라고 하고, 우린 따로 놀자.” 그녀가 말했다. “롤러코스터 어때? 나 그거 제일 좋아해!” 나는 그래,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롤러코스터가 뭔지 몰랐으니까. 그녀가 하는 말은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러니 내 행동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고 ‘저 사람이 하는 건 다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연정이는 롤러코스터는 맨 뒷자리가 가장 재밌다고 했다. 급강하를 할 때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된다면서. 거기 롤러코스터는 세 개의 언덕을 오르내렸다. 그중 두 번째 언덕에서 내려오는 구간에는 카메라가 여기 좀 보란 듯이 설치되어 있었다. 탑승자의 사진을 찍는 거였다. 추억 남기기 랬나. 앞의 앞줄도, 바로 앞줄도, 그리고 우리 줄도. 예외는 없었다. 연정이는 사진을 네 번이나 찍히면서도 줄곧 같은 자세를 취했다. 양팔을 쭉 펼친 포즈. 다 똑같은 것 같은데 맘에 드는 모양이 안 나왔다면서 계속 탄 거였다.


“이건 입술이 창백해서 안 예쁘고, 팔 각도도 좀 틀어졌어. 나는 비행기 모양이 좋은데. 비행운 알지? 비행기 뒤꽁무니에 생기는 거. 그걸 좋아하거든.”


그녀는 비행운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다가 사라지니까. 아무 말 없이 없어져도 어디로 갔는지 캐묻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삶을 살면 간섭도 안 받고 평탄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통금이 열 시야. 조금이라도 넘으면 바로 전화와. 답답해 죽겠어.” 그날이 일요일이었으니까,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야자를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가 김밥천국에서 돈가스랑 라면을 시켜 먹었다. 아홉 시 오십구 분이 되면 그녀는 “오늘은 들어가기 싫어.”하고 몸을 베베 꼬다가 오 분쯤 늦게 들어갔다.


11월 초의 어느 날, 그맘때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내가 사는 집이었다. 부모님은 열 시가 넘어서 돌아오셨던 터라 우리끼리 요리도 해 먹고 세상이 떠나가라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한참 꿈을 꾸고 있는데, 별안간 부모님이 나를 깨우고 있는 형국이 되어있는 거였다. 열 시가 넘었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정이의 핸드폰은 이미 부재중 전화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우린 서둘러 옷을 입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열 시 오십 분. 그녀가 집에 들어간 시간이었다. 그녀가 들어간 문 너머에선 나쁜 말들이 우렁차게 울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까지 늦은 적은 처음인데. 따지고 보면 내 잘못도 있을 텐데. 나는 문을 대차게 열고, 무릎을 꿇었다. “어머님, 저 때문에 연정이가 늦은 거예요. 죄송합니다.”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 정도.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연정이가 변했다. 내 문자를 무시했고, 전화는 받지 않았다. 집 앞으로 보러 가면 “왜 왔어. 할 것도 없는데.”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혹시 한 소리 들었냐고 열댓 번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녀가 보낸 게 이별통보 문자였다. 우리, 그만 만나자. 맨 처음 그녀가 비행운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이유를 묻는 일은 그녀가 싫어할 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질문할 수 없었다.


가끔 누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가 뭐예요? 라 물으면 롤러코스터요, 라 답했다.

이전 07화나 너무 좋아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