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 인상 깊은 문장에 줄을 치거나, 여백에다 떠오르는 것들을 휘갈겨 적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책장을 덮으면 적잖은 보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당 페이지는 귀퉁이를 살짝 접어두기도 해서 좋다고 느끼는 책은 두께가 두 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버릇은 가끔 소재를 찾으려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들춰볼 때 유용하다. 접어둔 페이지만 골라 읽어도 제법 괜찮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이런 습관 덕분에 누군가 내 책을 읽으면 내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을 거라고 언급했던 게 기억난다. 사실 그런 건 모두에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타투 같은 것이다. 타투한 사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편견은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반면, 누구는 시선을 흘긴다. 그런 건 감각하지 않으려 해도 불가항력을 가진 듯 감지된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고양이가 살았던 집에 들어갔을 때 코를 훌쩍이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취향을 고려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만들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S였다. 나는 그녀가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마음이 위로된다는 책을 선물해줬다. 포장지를 사서 책을 감싸고 마끈을 리본 모양으로 묶기도 했다. 근데 문제는 그냥 준 게 아니라, 한 번 읽어보고 줬다는 사실이다. 어떤 문장엔 줄을 긋고, 어떤 페이지엔 ‘여기가 가장 좋더라고.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썼다. 모퉁이를 접은 페이지도 있었다.
S는 그걸 불편해했다. 왜 쓸데없이 낙서를 해? 이것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 낙서라. 책에다 무언갈 적으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단어였다. 나한테 아무리 좋았던 거라도 그녀에겐 낙서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선물인데. 나는 서운하다, 했고 그녀는 그럼 그러지 말았어야지, 했다. 배운 게 있다면, 선의는 상대방이 원하거나 필요한 것을 줬을 때 성사되는 마음이라는 것. 바라지 않는 것을 강요하듯이 들이미는 행동은 위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메모장을 열었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볼 것, 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