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폭우

by 금교준

습한 냄새가 났다.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아선가. 목조주택인지라 잠시간만 방치해도 기분 나쁜 기운이 침실까지 침범하곤 했다. 이곳을 계약할 때 주인도 이곳이 특히 습기를 잘 머금어요,라고 했었다. 그래도 이 규모에 이 비용이면 나한테 과분하지, 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마른 장마라길래 내심 안심했었는데, 간헐적 폭우가 내리니까 집이 물에 잠긴 듯 꿉꿉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풀장에 몸을 담그고 있겠다, 하고 푸념할 정도였다. 아무튼 내 몸에서 나는 건지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온 건지 분간되지 않는 악취. 그걸 일단 맞닥뜨리면 당장 청소하는 건 둘째치고 내가 그런 냄새를 뭐라 할 처진가, 싶어 진다. 이 정도로 고약했던 적이 있었나, 뭐 그런 식이다.


새삼 과거를 나열해보기로 한다. 우정 가정 사랑 직장 다시 우정. 그동안 만나거나 스쳤던 사람들을 표현해보니 이런 단어들이 줄을 잇는다. 이번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 파고들어 보기로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그려보기.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좋아했던, 다른 누구에겐 치유하기 힘들 만큼 아프게 한 사람. 나는 그런 성질의 사람일 거였다. (인간의 양면성? 성론?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입각한 것 같다) “그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하고 누가 묻는다면, 지금으로선 상처를 준 사람이 가장 먼저요,라고 답변할 것도 같았다.


나 때문에 외로운 연애를 하게 됐던 사람이 있다. 은이다. 은이랑은 학교 축제에서 가까워졌다. 아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인사했는데, 몇 시간 다녀보니 제법 마음이 잘 맞았다. 툭툭 던지는 유머나 뭐든 맛있게 먹는 입맛, 밤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우리는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졌다. 은이가 자주 타던 버스는 캠퍼스 안까지도 운행했던 덕에 우린 학교 아니면 은이네 집 앞, 두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졸업 시즌이 되면서 은이랑 다투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고 싶었던 곳은 사천에 있었고, 은이는 서울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한 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것들에는 다분히 소홀해지는 습성이 있어서, 그녀가 서운해할 것들이 천지였다. 은이가 내게 가장 많이 하던 말이 “꼭 좋은 데 취업 안 해도 돼. 나는 오빠가 좋은 거니까. 돈 좀 못 벌어도 상관없어.”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동안 공부했던 게 좋은 곳에 가기 위해선데,라고 생각했다. 지향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건 다분히 어려운 일이었다. 자소서를 쓰고, 졸업 시험을 준비하고, 논문을 쓸 때 모두. 나는 그녀보단 나를 우선으로 여겼다. 이것만 하고 연락할게, 이 말이 의미하는 시간은 반나절을 훌쩍 넘겼다.


잔뜩 쌓인 흰 눈, 도로에 가득 퍼진 염화칼슘 냄새, 점퍼 외피를 뚫고 들어오는 한기. 그런 것들이 세상을 콱 채운 날에 은이와 헤어졌다. 그때는 그 상황을 무던히 받아들였었다. 문득 은이에게 내 속에 쟁여둔 생각들을 다 털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해본다. 잠 줄이며 애쓴 건 그곳에 가기 위해서야 라던가, 조금만 견뎌주면 더 기쁘게 해줄게 라던가. 적어도 나는 여전히 너를 좋아하고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해볼게, 했으면. 그렇게까지 외롭게 만들진 않았을 텐데.


지붕에 부딪히는 난폭한 소리. 우박 같은 빗소리가 들렸다. 꿉꿉한 냄새가 났다. 나 하나만 생각해서, 상대를 내 인생에서 배제하는 듯한 태도로 상처를 줬던 일화가 상기됐다. 이런 날엔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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