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 거 좋아요. 수정은 그 말을 버릇처럼 했다. 닭발집에서 만났던 날. 술을 마신 채 집으로 돌아가는 두 시간 동안 했던 영상통화를 기억한다. 그녀가 양치할 때 나는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었고, 그녀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불을 목까지 덮었을 때 나는 일호선 지하철을 탔다. 승객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화면을 조정하고, 줄 이어폰을 입술 맡에 오도록 잡았던 촉감이 생생하다.
우린 성대모사를 하거나 난데없이 상황극을 벌이거나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거나 했다. 나, 이런 거 좋아요. 수정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미소를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턱 부근의 이물감과 팔 저림 같은 것들은 신경쓸만한 일의 축에 들지 않았다. 이 전화를 끊을 수 있는 존재는 그녀 말고는 영영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간혹 흘긋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랑이 무서운 이유는 사람이 변하는 걸 직접 목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이 된 날, 그녀는 끝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게 허용된 것은 온기가 식은 목소리 뿐이었다.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어. 라는 물음에 굳이 왜 그래야 해? 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얼어붙는 듯한 심장의 느낌도.
이런 게 떠오를 때마다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은 자전거 타는 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배워두면 십수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처럼. 겪고 나면 십수 년이 지나도 찰나의 장면이 아른거리니까. 과거가 상기되는 날엔 그때와 비슷한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유난히 팔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