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서해가 더 좋은 법이야

by 금교준

널브러진 이불. 비산된 베개. 허물처럼 스러진 옷. 반쯤 차 있는 물컵. 그립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리워해 보기로 한다. 요즘 들어 생각의 연장선상에 담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어느 순간 어른이라는 명목 하에 가져야 할 의무 같은 게 있었다. 어른이라면 자고로 방 정리가 되어 있어야지. 자고로 혼자 살 줄도 알아야지. 자고로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알아야지. 자고로. 자고로... 그러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어른이 되기 전엔 자주 보던 것들을 보지 않게 된 것들이 꽤 많은 거였다.


자고로 바다는 서해가 더 좋은 법이야. 정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생각을 천기누설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조는 상당히 또박해서 자칫 명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일몰이 예쁘니까. 특히 지는 해가 바다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수평선 너머로 영영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다구. 너도 틀림없이 그럴 걸. 하면서 그녀는 아련한 걸 볼 때의 표정을 지었다. 서해에 뭔가를 두고 온 듯한 사람처럼.


문득 해안가에 둘이 있는 걸 상상한다. 쌍꺼풀이 진한 눈매, 오밀조밀한 코, 지는 해처럼 붉은 입술에 검정 생머리. 정아의 시선은 바다를 향한다. 갈매기는 수면 위를 날아다니고, 새끼 망둥어는 지표에 도달한 파도에 떠밀린다. 흙갈색의 바닷물은 파도의 모양을 했다가 흰색으로 깨진다. 저것 봐. 예쁘잖아. 정아의 어딘가 서글픈 목소리가 귓속을 윙윙 울린다. 그녀에게 무슨 일 있었냐는 말은 묻지 않는다. 내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도 그런 게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에. 그녀가 기억으로만 남은 사람이 될 때까지도. 서해를 좋아하는 사람이 서해를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지을 때마저도.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가끔 곁에 없는 것들을 추억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엔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고, 오늘은 가슴 한쪽이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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