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은 별안간에 찾아오고

나는 항상 같은 눈빛을 짓는다

by 금교준

물을 뿌리고 락스 칠을 하고 묵은 때를 닦는다. 세월을 보증하는 찌꺼기들이 떨어져 나간다. 고질병처럼 고약하게 눌어붙은 것들이 제거될 때의 쾌감. 적어도 나는 그것 하나 때문에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였다. 아쉬운 게 있다면 끝내고나면 감각 하나쯤 차단된다는 것. 특히 우리 집은 환기가 잘 안 되는 탓에 후각이 마비된다. 언젠가 배달시켰던 제육볶음을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살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맨손으로 수세미질을 했다가 촉각을 잃은 적도 있다. 비누를 손에 덕지덕지 칠해놓은 느낌이었다.


감각 상실이라 던가. 사전에서는 ‘신경에 자극을 주어도 감각 반응이 일어나지 아니하는 상태’라고 한다. 사전에 등록되어 있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은 걸 경험했다는 말이 되므로. 청소를 마치고 나면 몇 가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게 이상한 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경험이 더 있다. 영, 경아, 수현, 은이, S 그리고 J 등. 지금껏 나를 지나쳐간, 좋아하게 된 연유나 연애의 방식이 달랐던 사람들. 그들과의 마지막을 상기해보면 심장께가 무언가에 찔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따뜻했던 사람에게 차가운 말을 들었을 때. 함께 있는 시간이 지겨운 듯한 표정을 봤을 때. 나와 사진 찍는 걸 탐탁지 않아했을 때... 우리, 그만하자.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날 이후로 입맛을 잃었고, 냄새를 잃었고, 동공은 풀렸다. 주변에서 괜찮아, 인연은 많아. 하는 그 말이 귓전에서 무력하게 흩어졌다.


누군가 생각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별안간에 찾아오고, 나는 항상 같은 눈빛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