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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Sep 14. 2021

좌절스러운 날입니다

새벽 네 시. 몸을 씻고 침대에 주저앉았다. 쓸모없어진 여행가방에 시선을 던졌다 만다. 어쩐지 애석하다.


제주도로  연인을 만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느닷없는 태풍과 유난히 지독한 비염 때문이었다. 자연은 그렇다 치고 비염은. 그건 아직까지 존재해선  되는 거였는데. 유래 없는 일이 이런 식으로 고통을 수반줄은 몰랐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이부자리를 잠시간 펴놓았다. 이대로 누웠다간 애써 씻은 몸도 다시 눅눅해질  분명했다.


장거리 연애의 약점은 이런 데 있다. 자의가 아니라 불가항력의 무언가에 의해 제지당하는 경우. 예매해둔 항공권과 예약 확인 메시지를 동반한 렌터카 사진, 환불이 불가하다는 오션뷰 숙소까지. 그녀를 위한 서프라이즈가 부실 공사 건물처럼 무너졌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려던 새로운 시도가 실패한 거였다.


 애써봐야 속만 뒤집어질 거라고, 위로한다. 마음먹고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에 비해. 무산하는 일은 너무도 간소하다. 자꾸만 달궈지려는 몸을 달래면서 그저 결항이 확정되기를, 증발해버린 돈을 체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그러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쉽다.


때때로 좌절은 개연성 없이 찾아온다, 고 느낀다. 식은땀으로 젖은 이불이 말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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