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통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래선가 이웃집에 모하비가 새로 생겼다는 것, 일주일에 한 번씩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이 있다는 것(가게 사람들은 그를 두고 ‘라떼아저씨’라고 부른다), 비염약은 기운이 세서 운전하기 직전엔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요 며칠은 그런 것들에 주의가 쏠렸다. 글의 종류나 분량 같은 것에 골똘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나는 무언가에 빠지면 그 이외의 존재들을 인생에 무용한 것으로 느끼는 특징이 있었다.
오직 하나에만 주의를 몰두하는 성정은 제법 많은 문제를 일으켜왔다. 쌓인 빨래를 인지하지 못해서 동거인의 신경을 긁거나, 오랜만에 보자던 친구의 부탁을 미루고 미루다 그를 잃어버리거나, 십 분이라도 전화하고 싶어- 하는 연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애태우거나, 했다. 죄다 글을 써야 한다는 일념이 불러온 사건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 콕 박혀 있었을 때 주변 사람. 이를테면, 연인. 그녀는 내게 고독이나 외로움, 혹은 씁쓸함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느껴온 게 분명한 거였다. 나 오늘은 전화할 힘이 없어, 피곤해. 그냥 책 읽다가 잘게. 조금 이따가 연락할게.
요 근래엔 일을 마치면 가장 먼저 연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그녀는 온종일 내가 겪은 것들을 보고 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듣고 있으면 금세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속으로 삭여왔던 불만이나 불평 같은 것들을 그녀에게 늘어놓았다. 이 사람이 그랬다? 저 사람은 이랬다니깐. 그러고 좀 있으면 그 사람 왜 그런데 진짜- 라던지 너무 속상했겠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눈여겨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것들 중엔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쯤 포함된다. 이웃집의 차, 단골손님의 오토바이, 알레르기약,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