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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Dec 20. 2021

지금부터 하는 말은 하소연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이 기피하거나 천시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그런 시선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름 고민해본 삶의 양식이 관련됐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깊이가 생기지 않을까, 그것이 이쪽 길의 정답이 아니더라도... 추구하는 방식 정도는 될 것이다. 요 근래 경험을 포함해 빈곤한 게 많은 사람임을 자주 인지한다. 나는 서투른 것도, 무의미한 겁도 많다. 때때로 이해하지 못하고 곁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젠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찌 보면 순리인 것이다. 사회는 준비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은 사회에 적응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준비가 되었나? 스스로 자문해볼 때가 있다. 머릿속에선 부족하다는 대답이 예고 없이 튀어 오른다. 손가락을 펴며 가진 것들을 하나씩 센다. 한 손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나면 가슴이 좀 답답해진다. 뭘 했지, 싶은 것이다. 비교하면 불행해지기만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앞서가는 소식이 들리면 초조해진다. 같은 분야가 아닐지라도 어김없는 일이다. 가끔은 내가 추구하는 것이 아무리 불확실성을 먹으며 살아가는 분야라지만 너무했다 싶을 때도 있다. 연이어 어찌 됐든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폐가 쪼그라든다.      


어느 언론 기관에선 2030 세대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중년의 그것을 넘어섰지만, 자산까지 고려하면 청년들의 순자산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청년의 삶이 개선됐다는 거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결과를 뽑아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앞선 결론을 토대로 청년을  부류로 나눠볼  있을 것이다. 부채만 증가했거나 순자산까지 같이 증가했거나. 나는 전자다. 그들이 생각하는 청년 축에 들지 못했다.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이 자본주의인 이상 빈부격차는 필연적이고, 나도 빈이든 부이든 대열에 끼어 있다.(체제를 부정하는  결코 아니다)


다시금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떠올리기로 한다. 어떻게든 깊어지는 거. 누구는 아직 어리니 기회는 많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좀 더 치열해지기로 한다. 단언컨대 이건 하소연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단 다짐에 더 가깝다. 기분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가라앉았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고 여긴다. 단지, 짐을 더 짊어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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