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는 빈도가 늘었다. 아무렴 커피 내리는 일을 하니까 필연적인 거겠지. 처음엔 연습 삼아 마시던 게 습관이 됐다. 보통은 원 샷, 컨디션 좋을 땐 투 샷. 오늘처럼 커피를 마시고 속 쓰려할 땐 욕심부려서 샷을 더 추가한 경우였다. 이런 걸 어떻게 즐겨 먹지. 샷이란 건 추가할수록 커피의 씁쓸한 맛이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처럼 담기는 거라고 생각해본다.
영. 그녀는 커피를 시킬 때마다 샷 추가를 몇 번씩 했다. 나는 쓴맛이 좋아. 인생 같잖아. 그러곤 씩- 웃었다. 자꾸만 보고 싶었던 얼굴. 그래서 매일매일 봐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게 했던 그 얼굴. 그쪽 갈 일이 생겼는데 잠깐 볼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알았다고 했고, 우린 자주. 어쩌면 연인들보다 더 빈번하게 만났다.
끝을 길게 뺀 눈과 빨갛게 칠한 입술, 그리고 눈 옆에 콕 찍혀있는 매력점은 그녀와 만나지 않는 날마다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말수가 없고 가끔 까칠하게 군다고 했는데, 나와 있을 땐 말이 끊이질 않았다. 아마 이 세상에서 누가 그녀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냐고 물으면 분명 나일 거였다. 어제는 이랬어, 이해가 되니?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생각할수록 화나네. 그녀는 자신이 그러데이션 분노를 하는 사람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점점 격해진다면서. 그러면서도 컵 줘, 내가 치울게 같은 말을 할 때마다 그녀에게 배려받는 사람은 나뿐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직장인이 되면서 나와 그녀는 사는 곳이 백 킬로미터 남짓 멀어졌다. 모진 상사를 만나고, 낯선 곳에서 살아남으면서 어른이 되는 걸 실감했다. 어른은 자신의 앞길을 더 중요한 것으로 두고 누군가에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거라는 식으로. 점점 내게 그녀는 익숙한 존재가 되어갔고, 나는 그녀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만들지 않는 날이 늘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보단 친근한 사이에 가까웠으니까. 누군가가 누구에게 고백한 게 아니니까. 그건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그녀가 ‘너한테 나는 뭐니?’ 라고 물었을 때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요즘 왜 이렇게 시간을 안 내.’ 라고 했을 땐 같잖은 변명거리조차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저 내 앞길에 눈이 멀어 소홀해진 거였으니까. 그것마저도 이해해주는 게 어른이라고 줄곧 믿고 있었으니까. ‘이젠 보기 싫어, 답장하지 마.’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조금 고민했다. 정말 답장을 보내면 안 되는 걸까. 보낸다면 뭐라고 보내야 할까. 미안하다고 보내면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나는 알았어, 라고 했다.
그때 미안해, 라고 보냈으면 어땠을까. 구차한 말이라도 해봤으면 어땠을까. 힘들었을 때 곁에 없어서 속상했겠다고, 걱정된다고, 지금이라도 말해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여전히 샷 추가를 여러 번 할까. 한 모금 마신 커피가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