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텃밭 일기 D+14
상추와 감자의 싹이 올라왔다. 심지어 감자 중에 한 녀석은 제법 굵은 줄기를 가지기도 했다. 그동안 출근하면서 봤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새 쑥쑥 자랐다. 새싹을 발견하는 순간의 심정은 그야말로... 기적을 본 것만 같다. 마음이 들떠 헐레벌떡 사진을 찍었다.
먼저 상추. 상추는 일정한 간격으로 씨앗을 여러 개씩 뿌려뒀는데 거의 모든 씨앗이 발아에 성공한 것 같았다. 오손도손 모여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나중에는 한 지점당 하나의 상추만 남기고 솎아줘야 한다던데... 왠지 모르게 내가 너무 모아 심었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새싹을 보고 이렇게 감격스러웠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연의 신비로움이 체감되는 순간이랄지. 이 생명들을 위해 비료를 뿌리고 땅을 엎고 고랑도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 정도로 뿌듯할 줄은 몰랐다.
옆집 텃밭에서 씨앗이 날아온 것인지, 작년에 옆집에서 대신 심어줬던 파뿌리가 땅속에 남아있던 것인지, 이렇게 파가 새로 올라오기도 했다. 두 줄기가 올라온 것 같은데 이왕 올라온 김에 이 녀석들도 정성스레 키워다 먹어볼까 싶다. 뜻밖의 생명에 찾아오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감자 줄기가 올라온 녀석들도 보였다. 감자는 비닐에 둘러싸여 있어서 더 발견하기 힘들었는데 새삼 들춰보니 이렇게 굵게 자라고 있었다. 상추가 소소한 행복이라면 감자는 굵직한 행복처럼 느껴졌달까. 한순간에 이렇게 굵어진 줄기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 편이 벅차기도 하고, 자연에게 감사하기까지 했다. 감자는 100일이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니까 세 달 정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손으로 직접 비료를 뿌리고, 잔돌을 고르며 일일이 엎고, 씨앗을 뿌려둔 땅에 새 생명이 올라온다는 것의 기쁨을, 나는 실감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뗘진다. 다음 주면 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본가에 가는데 돌아오는 길에 고추 모종을 조금 얻어올까 한다. 옥수수 모종도 주문해서 다음 주 주말에 심을 예정이다. 새로운 생명들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기분이다.
* 곳곳에 발아한 상추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