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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l 13. 2020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도 될까?

응원해주려던 동생에게 '시작'을 배웠다. "좋아. 해도 돼!"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만 있을 뿐입니다." - 박웅현


 대학 시절 같이 일했던 동생과 이야기 봇짐을 풀었다. 그는 유독 나를 잘 따라주고 좋아해 줬는데, 항상 순수할 것만 같은 차분함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차분한 동생에게서 그동안과는 정반대인 불타는 열정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시나브로 열정적인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 글로 써내지 않고서는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동생을 ‘븨’라고 부르며 소개해보려 한다.

 

븨와의 만남

 

 대학교 때의 나는 집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집념으로 카페형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이던 방학동 한편에 있던 곳.(어디서 오신 건지 우리 PC방은 거의 항상 가득 찼다.) 운영하는 PC만 200대, 면적은 흡사 축구장 크기(체감상으로 항상 노동자의 의무를 마치면 만보는 거뜬히 넘겼다)의 가게에 연예인 뺨치는 점장님이 있던 곳. 사담이지만 아르바이트생들끼리 MT도 다녀오라고 비용까지 지원해주신 푸우-사장님이 있던 곳. (새삼 미소 지어지는 건 사장님의 푸우-같이 푸근한 인상 덕분인 게 확실하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다.


 븨와의 만남은 3년 차 때 일어났다. 파트너로 일하던 형이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대타를 구하거나 몸으로 때우던 때. 그래서 입꼬리가 찢어질 만치 반가웠다. 정말 놀라웠던 건 신입이 들어온다고 해서 마냥 신나 있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잘생긴 친구가 왔다는 거였다!(정말 연예인인 줄 알았다. 동성에게 설렌 건 맹세코 처음이었으니까.) 내가 놀란 건 그때뿐만이 아니다.

 븨는 수습 기간 동안 음식이나 커피 기기들의 작동원리와 손님을 대하는 방법들을 마구 익혀댔다. 마치 스펀지처럼!(이미 알고 있던 걸 수도..?) 실수를 하더라도 다른 동생들과는 다르게 어딘가 침착하게 대응하는 연륜이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븨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았다. 당시 듣는 것보다 말하는 걸 좋아하던 나로서는 맘에 쏙 드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내심 그때를 생각해보니 미안해진다.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썰을 풀어댔으니..ㅎ) 그렇게 븨와의 환상의 파트너십은 깊은 만족과 함께 시작됐다.


븨의 진가


 븨는 누구보다 경청을 잘해주는 사람이었다. ‘얘 또 시작이네~’할 법한 ‘꿈’ 얘기를 마구 설파해도 어미새의 밥처럼 여기고 귀중하게 들어줬으니까. 그 덕에 웬만한 친구한테도 꺼내지 않던 ‘짝사랑’ 얘기를 마구 꺼내놓기도 했다. (일이 힘들 때면, 븨는 내게 “형, 그녀를 생각하세요!”라고 조용히 말해주곤 했었다.ㅋㅋ)

 븨는 이런 면에서 정말 깊이 우려낸 곰탕 같은 사람이었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달큰 짭짤하게 들어주고, 적당한 소금으로 간을 맞춰주는 사람. 출근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사람. 나이가 계급이 되는 불편한 사회에서 나이 따위를 잊게 만들어주는 얼큰한 사람. 븨의 진가는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일시정지와 재생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듯이, 븨와 나 사이에도 이별이 있었다. 그였나 나였나? 둘 중 한 명이 의무적으로 군대를 들어가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렇게 그와 나의 연결고리는 끊어졌었다. 그렇게 서로 인스타로 근황만 주고받던 기간(짧게는 1년 반, 길게는 2년?) 동안 븨는 븨대로, 나는 나대로 나름의 성장을 거듭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븨와 나의 끊김은 ‘정지’가 아니라 ‘일시정지’ 일뿐이었다.


 첫 시집을 출간하고서,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다짐했다. 그때 문득, 그가 생각났다. 과연 븨가 내 연락을 받아 줄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줄까? 내 선물을 좋아해 줄까? 정말 고맙게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븨는 여전히 달큰하게 손을 잡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책을 건네고 서로의 근황을 마구 풀었다. 그때보다 좋아진 상황은 내가 조금은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된 것이다. 역시 븨는 자신의 꿈길을 스스로 포장하고, 빠르진 않지만 분명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븨가 준 믿음

 

 븨와 난 오늘 다시 한번 둘둘 싸놓은 이야기 봇짐을 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븨의 말에 나는 잊고 살던 다짐에 뒤통수를 맞았다.


 “형, 저 팀 한 번 만들어 보려고요.”  


 븨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미래를 내게 설명해줬고, 자신의 꿈을 보여줬다. 그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잊고 있던 다짐들을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그건 가능한 거다. 그러니 하고 싶다면 시작해라.’ 직장생활을 하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운 나는 ‘시작해라’ ‘하면 된다’ ‘일단 해보자’라고 설파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꿈을 시작하는 것'은 내심 망설이고 있던 거다. 소극적으로 찔러만 보고 있던 거다. 그 증거로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올라오는 소름들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그 소름들을 겨우 수습하던 찰나에 그는 내 수습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건넸다.


“형만 괜찮으면, 같이 도전해보지 않을래요?”


  그의 말은 한마디로 ‘나는 형을 믿어요. 형이 필요해요. 같이 꿈을 만들어봐요.’라는 말과 같았다. 믿음이 주는 감동은 맹세컨대 간이 적당하게 맞춰진 곰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거기에 잘 익은 김치까지 사악- 찢어 올려주는 것까지! 결론적으론, 오늘부터 븨는 내 소크라테스며 빌 게이츠가 됐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븨의 플라톤이며, 폴 앨런이 될 준비를 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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