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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Oct 01. 2020

아무리 긍정적인 발전이라도 저항은 필요하다

기술 발전에 대해 견지해야 할 태도의 방향성은 어느 쪽일까?

“우리는 지금 코로나로 인해 삶의 공식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생존의 기로에서 내가 나를 살려낸 리부트 공식 네 가지가 그것이다. 그 첫 번째는 온택트on-tact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이 막힌 언택트 시대는 온택트, 즉 온라인 대면으로 뚫어야 한다.” - 스타강사 김미경 대표, <리부트> 중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어느새 커피 한 잔 마시며 대화하던 모임 장소는 카페에서 Zoo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옮겨갔다. 친인척 간 삼삼오오 모여 근황과 돈이 오고 가던 명절도 ‘잠시 멈춤’ 캠페인으로 대체됐다. 이는 만남 대신에 화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각자의 집에서 쉬는 것으로써 전 국민이 통합하여 결정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것 외에도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등 4차 산업혁명에 해당되는 기술들도 점점 국민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추세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등.. 이러한 기술들은 인간의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던 SF영화는 더 이상 SF가 아니라 현실을 담은 영화쯤으로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를 하면 틀에 맞춘 사무실에 앉아있지 않아도 되고, 정체되는 도로 위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화상회의에서는 직접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전반적인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기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새로이 바뀌는 미래상을 단순히 좋아하기보다는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해도 다양한 시각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직업군들이 사라질 수 있다. 한순간에 대규모 실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실직된 가정의 생활이 급격히 어려워져서 경제적인 측면, 사회적인 측면 모두에서 국가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만약 ‘초연결’ 기술로 인해 직접적인 대면보다 온라인 대면이 아예 일상화가 되면 어떻게 될까? 출퇴근 시간의 절약, 시간의 효율적인 활용 등 수많은 장점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는 직접적인 만남이 없으면, 사람은 우울함과 고독감이 상승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근황을 묻고,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리학계에서는 ‘사이버 상담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들도 점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긍정적인 발전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졌을까?

 

그렇다면, 과거에는 이러한 기술 발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었을까?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 농업이 주된 먹거리던 사람들에 의한 저항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1663년 런던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당한다는 이유로 제재소에 새로 설치한 기계를 파괴하고 1676년에는 리본 제조공들이 자기들의 기계를 파괴했었다. 1710년에는 새 양말 기계의 도입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이런 종류의 사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산업혁명이 절정이던 1811년부터 1816년에 걸쳐 ‘러다이트’라는 기계 파괴주의자들이 노팅검의 방직기를 파괴한 것이다.” -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중에서


이처럼 과거에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저항들은 수없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만큼 기존 노동자들이 일자리에 대한 공포심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부분도 이런 부분이다. 기술이 주는 장점들은 확실히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측면들도 분명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저항들과 생각들이 보여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기술들은 분명 수많은 이점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픈 상처들도 같이 전해준다. 따라서, 이러한 상처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수용보다는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해야 한다. 앞서 본 저항들도 이에 준하는 활동들이었을 테다. 먼저 목소리를 내어 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만족하며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항상 견지하고, 공부해갔으면 한다. 



 * 이 글의 목적은 새로 발전되어 가는 기술들에 대해 ‘부정적이다!’ ‘배척해야 한다!’ 등과 같은 시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정말 긍정적인 기술임에는 긍정하나, 무조건적인 수용은 피해야 할 것 같다는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무슨 일이든 반대되는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해야 더 긍정적인 방향이 도출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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