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공동번역)
To have faith to be sure of the things we hope for , to be certain of the things we can not see.
☆시
{히브리서 11장 1절}
/문익환
그것은 잔디씨 속에 이는 봄바람이다.
그것은 눈먼 아이 가슴에서 자라는 태앙이다
그것은 언 땅 속에서 부릅 뜬 개구리의 눈망울이다.
그것은 시인의 말 속에서 태동하는 애기 숨소리다.
그것은,
그것은 내일을 오늘처럼 바라는 마음이요, 오늘을 내일처럼 믿는 마음이다.
: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성경에서 이보다 믿음에 대한 구체적 진술은 없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우주 만물과 사람의 창조, 죄의 기원과 인간의 타락, 희생제물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끝에 메시아를 통한 인간의 최종적인 사랑의 완성 등을 성경은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절대구주의 계획과 완성과는 무관하게 불완전하다.
예고없이 발생하는 인간의 불행과 치열한 전쟁,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형참사로 인한 죽음 등은 인간이 대처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질문이다.
교리의 대명사인 바울이 쓴 히브리서이지만 11장 1절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바라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체가 믿음이라고 하지 않나.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어디 있을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성이며 더 이상 길이 없는 자에게 증거가 되는 말씀이다. 문익환 시인은 역사의 파도를 몸소 느끼고 맞이하면서 한 없이 절망을 꿈꾸던 불우한 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1976년 민주구국선언 이후 11번의 감옥생활을 경험해야 했다. 1989년 당시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평양 방문은 민족의 통일을 위한 최선의 실천이었다. 자기의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예수를 닮은 고행의 길이었다. 불행을 감수하고 바라는 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실체화하기 위한 희생제물로 기꺼이 자기 자신을 바친 것이다.
이 시대에, 지금의 한국 기독교에 문익환과 같은 목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건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