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영어 회화 수업을 받는 딸아이를 데려다줘야 했다. 아이들 볼 때마다 내가 잘 살아야겠다 생각을 한다. 어디 가서 흠 잡히고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이들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점차 느낀 점이다.
적어도 아빠의 행실이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 앞날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나는 부끄러운 아빠였다. 요즘 외출을 자제하고 음주를 단속하고 있다. 술을 절제하니 실수가 사라졌다. 적어도 맨 정신에선 자신을 조절할 수 있다. 건강도 지킬 수 있다. 내 중심은 당연히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애들에게 아내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문학은 그다음의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겠지만, 만약 문학 때문에 가정이 훼손된다면 가차 없이 버릴 것이다.
세상 어떤 시인들은 스스로 변방이라고 말한다. 또는 스스로 삼류라고 평하기도 한다.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이면에는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최근의 변화지만 그런 중앙과 변방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전혀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동체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우정을 제공하지만 너무 많이 모이거나 떼거리가 되면 또 다른 힘이 된다. 나는 그것을 권력이라고 부른다.
권력은 꼭 정권을 밥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어느 집단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어느 직장이든지 조직이든지 각자의 위치가 있게 되고 역할과 지명도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나는 그런 권력 앞에 무기력하다. 이런 내 생각조차도 아무런 의미는 없다.
내게 의미 있는 일이란 어떻게 하면 임금 생활을 더 지속하고 직장에서 잘려나가지 않으며 처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일이며 비록 가난하더라도 웃음과 행복이 넘쳐나는 천국 같은 가정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다. 나는 그런 과정에 서 있을 뿐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다. 내일은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