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아들 생일이 지나고 나니 이제 12월을 앞두고 있다. 몇 달 전부터 보기로 했던 G 시인과 L 교수님은 여태 만나지 못하고 있다. 곧 만나야 하는데, 만나고 싶은데 누군가를 만나려 하는 것조차 그분들께 민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체를 탈퇴하다 보니 가끔 들려오던 문우님들의 소식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사람 구실 하며 살아야 하는데 먹고사는 게 뭔지 그마저도 쉽지 않다.
단체라는 것이 큰 의미를 준다고 본다. 소속되어 있을 때 못 느꼈는데 탈퇴해보니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혼자 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고심 끝에 가입 신청했는데 보류나 거부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만약을 대비해서 두어 군데 신청했으니 받아주는 곳에 회원으로 들어가 있을 생각이다. 나의 마음 남들이 받아주기가 쉽지 않다. 나도 그간 남의 마음 쉽게 접수하지 못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속마음이다. 대부분은 진의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삶의 지형지물을 배경으로 얕은 위장술에 전전긍긍하지만, 대다수 발각되고 만다. 사람들은 그럴 때 상대방에 대하여 실망하게 되고 순식간에 이탈하게 된다. 속이 탄탄하고 인간적인 피가 흐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슨 협회 분과 정회원이라든지 무슨 작가단체 정회원이라는 등의 수식어는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이라는 명사를 꾸며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소속감이란 것은 자기 정체성을 반성하고 변화시키는 중요성이 있다. 사람들은 가정이라는 소속을 통해 가족 구성원의 연대와 애정을 유지해 나간다. 가정을 이탈한 아버지는 속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다. 가족을 버리고 나간 여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소속은 관계 유지라는 측면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남이 불러주는 호칭에 그 이름에 속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사람인가? 나는 아버지인가? 나는 남편인가? 나는 시인인가? 사람들이 불러주는 호칭에 넘어져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예의와 사교로 그냥 불러주는 이름일 수도 있다. 철저한 자기 검열에 몇 번이고 걸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든, 죽든, 살든 다시 일어서라고 나에게 명령한다.
그동안 살며 초등생만도 못한 사고와 행동 의식이 적잖게 많았음을 시인한다. 언어의 세계는 어찌나 난폭했던지 폭탄 같은 육두문자로 사람들 마음을 초토화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손톱에 끼인 검은 진분처럼 오래 담가도 세척되지 않는 얼룩진 형태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도저히 시를 쓸 수 없는 모습으로 살면서도 시를 쓰는 자신을 반성한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