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아버지로 살다가...
케이블 티브이에서 전원일기를 본다. 각박한 도시 생활도 이젠 지겨울 때가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예전에 시골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지금은 상업지구가 잇따라 생기면서 웬만한 서울 변두리보다 도시화 되었다. 도시의 이면은 부와 대조적인 가난과 빈곤이다.
명절을 지내고 나니 한쪽 구석에서 아련한 슬픔이 몰려온다. 오십 대의 가을은 더 깊어졌고 반세기를 살아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재미있는 동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추석 전날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나오셔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내게 아버지의 죽음은 지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슴앓이이다. 스물셋이라는 나의 나이는 아버지를 여의기엔 조금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그보다는 당시 아버지의 연세가 53세 불과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똑바로 못살아서 어머니가 지금 아프신 것 같다.
이 세상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어 가난하여지자는 구호는 한 번도 외친 적이 없건만 친척들을 들어보면 나처럼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애들에게도 미안해진다. 가족에게 차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몸뚱어리 하나만은 건강하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그리 녹록지 않겠지만 아이들 키울 때까지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누릴 개인적 자유에 대해선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로서 해야 할 역할을 다하고 나면 설령 전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을 준비를 한 자는 얼마나 행복한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