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나비 / 라윤영
지구의 무게를 짊어진 몸
담배 생각이 나서 담배를 문다
필터가 으깨어질 때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다
무심히 바라보는 피아노
연주되지 않는 피아노
음악이 흐르지 않는 거실은 위험하다
바람은 늘 서쪽에서 탄생한다
맨 처음 울음처럼 천진난만하다
서쪽, 서쪽, 나의 서쪽......
서쪽으로 가자
나의 탄생을 위해
무구한 순진을 위해
서쪽으로
가벼운 영혼으로
-『둥근 이름』, 부크크, 2019.
감상- 라윤영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저녁녘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기도 하며,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은 말한다. 한마디로 심하게 고생하면서도 인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어야 겨우 시인(詩人)으로 시인(是認)해줄 만하다는 얘기다.
라 시인은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사는 듯하다. 지구의 무게를 짊어진 그도 고생이 여간해 보이진 않는다. “연주되지 않는 피아노”는 가정의 무거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가장으로서 가정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다하려는 마음이 그 무거움을 더 크게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피아노가 그냥 연주될 리 없다. 피아노를 배울 시간과 돈이 있어야 하고,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도록 방음이 되거나 아니면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또 피아노 연주가 계속되려면 집안의 사소한 불화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조건으로부터 누군들 자유롭겠는가. 피아노가 아름다운 화음을 내게끔 평화와 안녕을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있다면 현실이 아닌 공간, 시인이 꿈꾸는 ‘서쪽’이 있을 뿐이다. 김종삼 시인이 말했던 “풍경(風景)의 배음(背音)”이 생각난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樂器)를 가진 아이와/ 손쥐고 가고 있었다”(「배음」)는 다소 난해한 시인데, 세상에 나온 이상, 이전의 평화와 안녕 또 “무구한 순진”은 위협받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쪽 나비로 돌아가는 길이 있을 거 같진 않다. 다만, 이 세상에서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나비를 부를 것이라는 바람은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이동훈)
*이동훈 시인: 시인, 평론가.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이다.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