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으로 세우는 힘
/라윤영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하나 사과는 붉어져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가라 하네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이 오로지
몸으로 공장에서 일해왔네
또다시 공장으로 가야 하나
순식간에 장갑이 벗겨지고
실업자로 전락한 신세
누구에게 말해야 하나
무엇으로 하소연해야 하나
경기불황 침체 핑계로
감원 감봉 휘둘러대는 쇠파이프에
아프다는 소리도 못 질러보고 쓰러지는 노동자들
또다시 바람이 불어오면
허리 꺽인 풀잎들
다시 몸 세워 바둥바둥 안간힘 쓰네
쓰러지는 힘까지 모아
뿌리째 뜯겨나가지 않는
세우는 힘으로
다시 풀잎 되어
공장 뜰 앞 푸름으로.
*출처: 라윤영 시집 <개미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