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변이
온도는 영원불변하지 않다. 하강과 상승을 반복한다.
시에도 온도가 있다. 차갑거나 따뜻한 자연의 표정은 때로는 무감각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온도를 잃어버린 손......
살아있지 않은 망자의 손처럼 문학이 삶의 체온을 떠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매번 강요된 노동은 육체를 지치게 하고 정신을 흔들어댄다.
시는 지친 삶의 큰 위로이다.
오랫동안 시를 읽었고 쓰기를 반복했다. 시가 되지 못해 버려진 시들이 상당수다.
수많은 슛을 남발했지만 그중에 정작 골망을 흔든 건 몇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진정한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인간은 존재를 이어왔다. 그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인간의 감성이었다. 감성은 이성보다 위에 있다.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끼고 만지는 가운데 인간의 감정은 불멸을 이어왔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이 같은 이유로 시의 경계는 명확해진다. 하나의 문장이 시로써 쓰임 받을 수 있는 근거이다. 이번 시집을 펴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적어도 예술로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자리 잡은 묘한 불안감이었다. 확대하자면 그것은 공포와도 같은 힘겨운 자아의 분쟁이었다.
적어도 첫 번째 시집에서 보인 퍼소나로부터의 이탈과 탈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로써 충분히 재탄생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새롭게 나아가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
충혈된 눈빛
흔들리는 해변
시간을 밟는 어두운 지평선
오늘을 따라 내일을 몰고 간다
알 수 없는 저 끝으로
붉은 날개로 흐르는 웃음
-(서해 부분)
이곳에 없는 그곳으로
나비가 하얗게 날아간다.
-(여기에 없는 그곳 부분)
"저 끝으로" "서해로 "로의 진입은 새로운 변이를 위한 적합한 장소로 여겨진다.
질식할 것 같은 공간으로부터 새로운 공간으로의 진입은 앞으로의 행로에 매우 희망적이다.
평범한 언어 세계의 허물을 벗고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의 변이야말로 앞으로 찾아가야 할 세계로의 진입로인 것이다.
2. 낯선 그로테스크의 꿈결
날마다 꿈을 꾼다. 야전의 황무지를 걸어가고 숲을 헤치고 때로는 낮은 포복으로 자갈길을 통과한다.
어둠이 엄습한 보이지 않는 길은 아마도 침투병의 기동로가 될 것이다. 확연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자리다툼으로 아우성일 것이다.
기우는 저녁해의 어깨는 왠지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것 같은 방전 감을 준다. 하지만 느낄 수 있다. 캄캄한 능선을 따라 기울어진 길을 개척해 나가는 동안 확연히 밝아지는 시력을...
어둠 속의 그림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은 참고 견디며 숙영지를 향하여 걸음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매우 당위적이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주변은 많은 풍경들로 가득 차 있다.
풀잎의 노래와 나뭇가지들이 서로를 기대며 속삭이는 바람 소리, 바위의 근엄한 부동자세와 계곡을 따라 들려오는 맑은 물소리... 모두가 벗이고 친구이다.
지금 머문 자리는 몽환적이다. 어딘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낯선 세계이지만 결국은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꽃밭이다
붉은 핏방울
푸른 꽃 보랏빛 땅
제정신을 버린 어깨 위 바람으로 조용하다
허기진 입은 명랑하지만
작은 입술 속으로
침투하는 먼지는 방어적이다
버릴 수 없는 마음으로
버려지는 것들이 쌓여가고
틈새를 돌파하는 새 한 마리
검은 구름 속에서 구겨지고 있다
의미 없는 몸짓으로 대화를 하는
등 뒤의 얼굴
아무것도 아니기에
사과는 입을 벌린 채 웃고 있다
어디에도 없는 웃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늘 속으로 감춘다
햇살은 보이지 않는 곳을 비추지 않는다
꿈틀거리며 웃는 그 바람
내일은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에서 전문)
3.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웃는 세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얼굴을 본다.
아내의 해맑은 표정을 훔쳐볼 때 세상은 갑자기 행복해진다.
나 역시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죽지 않는 계단" (김종삼)이 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나는 자기 자신에게 아무리 힘들고 버거운 삶을 살아도 죽지 않겠다고 날마다 약속한다.
인간은 누구나 울음을 머금고 탄생한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통하여 이 세상은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다. 결코, 몽상가의 던지는 말 한마디가 아닌 진실한 사실로써.
꿈을 삭제하는 구름은 멀리 있다
친절한 문장이 도치된 숲 속 바람으로
사랑이라는 변주곡이 흐른다
따뜻하게 아픈 손목을 잡는 기울어진 나무들
풀잎 사이 젖은 웃음으로
움돋는 벌레 한 마리
파란 꿈을 지우며 달콤한 욕설을 제거하고 있다
따뜻한 꿈으로
웃는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웃는 세계 부분)
이 세상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을 나는 '사랑'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