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by 라윤영

마광수 님은 가상의 여관, 상상의 여관을 지었다. 그는 결국 허무 속에서 세상의 혼돈을 뼈저리게 체험하다가 자살이라는 마지막 시를 쓰면서 이 세상과 이별했다. 한국인의 범법은 갈수록 증가하고 도처에 악의 흉기를 든 도적떼들과 강도들이 범람하여 물든 세상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여전히 높은 도덕의식과 윤리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신을 창조했고 인간은 그런 절대적 신 앞에서 상대적으로 나약하고 볼품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 모든 걸 선과 악, 정의와 부정으로 이분화시키고 말았다.


무엇보다 자의적인 의식을 버리게 하였고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절대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그는 가상의 여관, 상상의 여관을 지었다. 그는 결국 허무 속에서 세상의 혼돈을 뼈저리게 체험하다가 이 세상과 이별했다.

모호한 형이상학적인 관념 속에서 우리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진리의 출몰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 출몰 이후, 인간은 어떤 미확인 괴물에 의해 점령되어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결과를 내기에 부적합한 열등 의지를 지닌다. 끝내는 나약한 눈물을 흘리는 어처구니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세상엔 없는 파라다이스를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보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곳임을 체감하게 된다. 이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가 마광수 님이 간직했던 장미여관은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모세의 십계처럼 내려진 신의 윤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윤리와 거의 동일시되었다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전락시킨 신의 횡포는 인간으로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강권적인 무력행사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얼굴에 속고 언어에 속는다. 나중엔 속는 것조차 모른다. 그것이 세속화다.


그 어떤 속임수가 인간을 독식하고 있다. 우리는 괴물에 의해 노예가 된다. 그마저도 순종과 긍정적 삶이라는 명분론 속에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맹목과 맹신으로 철저하게 세뇌되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은 신 앞에서 보다 똑똑한 척해야 했고 자립해야 했다. 적어도 신이 부여한 겉만 뻔지르르한 윤리 속에서 일찍이 빠져나와야 했다. 보이지 않고 끝도 없는 광야에서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은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인간 스스로 신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인간이 해방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나안은 없다. 이에 대해 나는 절망한다.

신이 의도는 성공적으로 끝 이날 것 같다. 인간에게 신이란 맞짱 뜰 수조차 없는 절대 권력자가 되어 버렸다. 도덕의 제왕인 신을 상대로 인간 해방을 꿈꾼다는 것은 비애 그 자체다.


결국, 마광수 님이 생각한 장미여관은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진정한 천국이다. 문득, 마광수, 그가 생각이 났다. 그가 가진 외로움과 그의 여관을 상상하는 것조차 내게는 무척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잠시 골고다 언덕에 자리 잡고 있을 장미여관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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