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급여를 받았다. 나는 아직까지 월급봉투로 급여를 받고 있다. 직업군인이었을 때는 매달 10일이면 통장에 급여가 들어왔고 시간 외 수당만 따로 봉투로 받았었다. 지나와보니 그때가 마음 편하게 살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날을 회상하는 버릇이 요즘 부쩍 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뒷바라지 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들 양육은 아비의 책무이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 꿈을 위해 벌이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함이 힘들어질 때 세상 아버지들은 당황한다.
20여 년간 나는 수없이 많은 공장을 돌아다녔다. 간혹 잘리기도 하고 직장이 마음에 안 들어서 스스로 나간 적도 많다. 새벽까지 일하며 여관에서 홀로 잠을 자는 일은 그래도 운이 좋은 날이다. 공장 바닥에 누워서 두어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또다시 작업을 이어간 날들도 많았으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등 뒤에 짊어진 가족이라는 덩어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유에 대한 그리움과 자존감이 강해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때려 지우고 나온 내가 아니었나. 그러나 지금 내게 얼마 큼의 자존감이 중량을 싣고 있으며 또 그 잘난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음이다. 마음은 늘 자유를 건축하는 땅이다. 그 땅에서만큼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리라.
치열한 삶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를 어찌 생각할는지 모른다. 나는 다만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살아왔다. 가족들 굶기지 않기 위해 살았다. 무엇인가 그런 생존 의식 속에 결여된 허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실제 삶과는 다른 또 하나의 빈곤이었다. 그런 결핍감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마 문학을 하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다.
밥을 짓듯 시를 짓고 그 시를 나누는 행위는 인간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배식구 인지도 모른다. 그램을 달고 정형화된 배식이 아닌 자유배식이다. 마음껏 배부를 수 있는 식량이다.
나는 내게 머무르고 있는 모든 시를 먹는다. 먹고 마시며 허기를 채우고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문학은 또 다른 덩어리이다. 내겐 가족이라는 덩어리가 있다. 그것은 사랑의 덩어리이다.
문학이라는 덩어리는 때론 갈라지고 뜨거운 피를 흘리게 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대한 혐오와 삐뚤어진 시선도 있다. 그러나, 정에 대한 반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합을 이루고 재기하여 나가는 올바름이 있다.
세상은 과연 옳은가, 그러한 세상 속에 매설되어 있는 나는 옳은가 되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고 새로워질 수 없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서 피자와 치킨을 사들고 들어가야겠다.
이 글은 내 삶에 대한 반성문이다.
#반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