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by 라윤영



지난 1년간 외부 출입을 통제했다. 세상의 변화를 주시하기보단 내면의 상황을 조율하는데 힘을 쏟았다. 아내와 함께 도봉산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등산객의 시선을 뒤로한 채 우리는 매우 친근하게 산길을 걸었다. 부부는 나이 들수록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지금 여기에 서있다. 제대를 하고 나서 먼저 전역한 선배 몇은 내게 보험설계사를 권유했다. 보험 영업을 하려면 간 쓸개를 다 내어줘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마땅한 것도 아니었다. 군 경력을 팔아 나는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들어갔다. 처음 했던 일은 보안원이었다. 호텔 객실 복도와 라운지를 돌며 경계를 했었다. 그러던 중 보안과장의 추천으로 검수과로 이직했다. 원가관리를 하며 검수를 하는 부서였다. 기타 창고 물품관리를 하는 곳이었다. 모든 걸 엑셀 작업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컴퓨터를 영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저 오더를 보고 창고에서 물품을 꺼내 주는 일만으로도 버거웠다. 다행히 기본 영어 실력이 되어 영문으로 구성된 오더를 보고 입출고를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턴사원이었기에 몇 개월이 지난 후 워커힐 호텔 입사 면접을 보았다. 물론 기초적인 필기시험을 통과한 후였다. 시험은 영어와 일어를 보았고 인성검사를 보았는데 운 좋게 통과했다. 면접은 영어 톡킹과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확실히 떨어진 날, 나는 세상이 황무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이란 곳에 들어와서 정확히 8개월이 지난 시간이었다. 만약 그때 공식 입사가 되었더라면 나는 지금 호텔 맨으로 살아갔을 일이다.

호텔이란 곳은 부유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었다. 나는 식음료를 담당했는데 루이 13세 같은 양주는 원가가 한 병에 300만 원이 넘었다. 아마 지금은 더 비쌀 것이다. 거기 있는 동안 박찬호가 왔고 김대중 대통령이 왔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심수봉도 왔다. 나는 헬퍼로 심수봉 콘서트에 지원 나갔는데 웨이터를 대행했다. 심수봉 씨가 커피 한 잔 타 달라고 해서 타 주었는데 "커피가 참 맛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잊지 못할 개인적 추억이다.

나는 그때 전역하고 첫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그 시절 사글셋 방 한 칸에 살면서 나의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지금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 때였다. 면접에 탈락하고 다른 부서로 가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절망을 느꼈다. 하우스키핑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 부서는 객실관리 부서인데 쉽게 말해 그냥 청소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했던 나이였는지 용납이 안 되어 관두었다. 그래서였을까. 뒷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뛰쳐나간 두 번째 전역이었다.

후에, 나는 막일, 택시기사, 택배 운전, 가락시장 배달부, 횟집 보조 등 수많은 일을 잠깐잠깐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은 귀금속 노동자로 베테랑이 되어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이 거듭될수록 가정을 지켜나가기가 힘들었다. 수없이 술을 마셔댔지만 술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어느덧 중독자가 되었다. 그런 과정 속에 정말 힘들었던 사람은 내가 아닌 아내였다.

결국 나는 기도원에 갔다. 누군가 가라고 해서 간 게 아니었다.
세상이 싫어서 스스로 들어갔다. 반지하의 습기 어린 밀폐된 공간은 나의 주거지였다. 방바닥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녔다. 아마, 그때였을까. 내가 진정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신을 의지했던 시간은...

그 기도원은 문제가 많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고발되었다. 내가 있을 때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 대부분의 중독자와 몸이 불편하다 못해 아픈 사람들과 정신질환자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곳 원장은 방송이 나간 후 구속되었다. 나도 거기에서 정신질환자가 칼 들고 내 방안에 들어와서 두둘겨 패 버린 적이 있었다. 마음이 아픈 자를 때렸던 것은 지금도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 아내가 있었다.

조금씩 변화되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는 은밀한 침투는 결국 사랑의 회복을 위한 귀환이었다.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리가 필요하다. 어수선한 서랍장에 감추어진 기밀문서는 시간이 지나면 폐기되어야 할 문장이다.
새롭게 발돋움하기 위한 지금의 발악이다.

그렇다. 나는 살아있을 것이다.
죽지 않는 계단으로서 아내와 아이들 앞에 놓여야 한다.


사랑한다. 내 뒤의 모든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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