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불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그때그때 상황에 즉흥적으로 대처한다.
'생각'해 본 것 같지만, 사실은 '반응'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판단을 꽤나 합리적이라 믿는다.
나 자신의 의사결정 과정조차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은 말한다.
근시안적 사고를 극복하는 핵심은,
내 안에서 반복되는 사고의 신호를 인식하고 자각하는 것이라고.
나는 오늘 아침, 그 말을 떠올리게 되는 일을 겪었다.
한 달 전 새 캐리어 두 개를 사면서
십 년쯤 사용한 오래된 캐리어 두 개를 버렸다.
그런데 19살이 된 둘째가
멀쩡해 보이는 캐리어를 왜 버렸느냐고 물었다.
“겉껍질이 벗겨지고, 지퍼도 고장 나서 잘 안 돼.”
그러자 아이는 말했다.
“고치면 되잖아. 수선 맡기면 되잖아.”
나는 곧바로 대꾸했다.
“너무 오래돼서 어느 브랜드인지도 모르겠고,
이걸 수선해 주는 곳이 어딨는지도 모르겠어.”
아이는 다시 말했다.
“알아보면 있지. 왜 없겠냐.”
아이의 운동 시간이 다가와
대화는 그쯤에서 끝이 났다.
글로 적으니 그때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조금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 전부터
“이런 건 중고로 팔면 되지 않나.”
“이런 걸 누가 사겠나.”
같은 말들로, 작은 마찰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상황에서 아이와 나 모두
근시안적인 사고로 즉흥적인 반응을 했을 뿐이다.
아이가 즉흥적으로 반응했더라도,
내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상황을 바라보았다면
말은 달라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버릴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나를 변호하고 싶은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그 감정을 인식하고 자각했더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수선해 주는 곳이 있을까?
알아봤더라면 좋았겠네.
다만 수선 비용이랑 수선해 주는 곳까지 가는 시간,
이동하는 수고까지 생각해보면
십 년 넘게 잘 쓴 만큼,
이번에는 버리고 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
그랬다면
아이도 덜 저항하며 날선 반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별것 아닌 일로
감정이 상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며 하나 배웠다.
다음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반응하기 전에,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먼저 인식하고 자각해보자고.
그 작은 멈춤이
대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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