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계단

아이의 호기심

by 별빛

“엄마, 나 여기 올라가고 싶어.”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계단을 가리키며,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말했다.




“또? 아까도 몇 번이나 올라갔잖아. 방금도 올라갔다 내려왔고.”

눈이 튀어나올 듯 아이를 쏘아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거칠게 내쉬며, 토해내듯 말했다.




5층 계단을 오르내린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고,

태어난 지 일곱 달이 막 지난 둘째 아이업고 있었다.

양쪽 겨드랑이는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여름은 여름답게 얄짤없이 뜨거웠고, 얼굴에 겨우 바르고 나온 선크림은 진작에 땀에 씻겨 내려갔다.




“저기랑 여기랑 높이가 다르잖아.

여기도 올라가고 싶어. 꼭 올라가야 돼.”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에 힘을 주고,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말하는 아이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늘 한 점 없는 한낮.

더위 속에서 더는 실랑이 하고 싶지 않았고,

간절한 아이의 눈빛을 마주하니

무작정 안 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아, 엄마가 지금 진짜 너무 힘들어.

우리 이미 몇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왔잖아.

이번에 딱 한 번만 더 올라갔다 내려와서

놀이터로 가자. 원래 놀이터 가기로 했잖아.

엄마 진짜, 진짜 힘들어. 동생도 업고 있잖아.”




아이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생각하더니 말했다.

“동생을 유모차에 두고 빨리 올라갔다 오면 되잖아.”

한숨이 나오려다 다시 말했다.

“동생은 아직 말 못 하는 아기라서 혼자 두면 안 돼. 위험할 수도 있어. 그건 안 돼.”




평소 ‘안 돼’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엄마의 입에서,

단호한 말이 나와서였을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딱 한 번만 올라갔다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그 생각 하나로 다시 힘을 냈다.

두 손으로 등에 업은 둘째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 창문 앞에서 아이가 멈춰 섰다.

“엄마, 나 창문 밖에 보고 싶어.”

나는 아이를 안아 들어 창문 밖 너머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4층에서 아이는 다시 멈춰 섰다. 또 창문 밖을 보고 싶단다.

속으로는 ‘아이고, 또야?’ 했지만, 말없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안고 있어 달란다.

‘하.. 너무 덥고 힘들어.. 짜증도 난다..'




5층, 6층 앞에서도 아이는 멈춰 섰다. 나는 문득 이유가 궁금해져 물었다.

“현아, 왜 층마다 창문 밖을 보고 싶어?”

아이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3층이랑 4층이랑 5층이랑, 층마다 높이가 다르잖아.

위에서 보이는 게 조금씩 달라. 그래서 또 보고 싶어.”




그제야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면서, 조금 전까지 치밀어 오르던 짜증은 어느새 가라앉았다.

나에겐 별거 아닌 일이지만, 아이의 눈에 세상은 모든 것이 처음일 테고, 호기심일 테니 그럴 수 있지.




한여름 한낮,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 시간은

지금도 여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아이는 그때 네 살이었다.




#육아이야기 #아이와대화 #일상기록 #아이의호기심

#감정에세이

작가의 이전글나는 왜 아이의 말에 먼저 반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