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만 있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y 별빛

“쟤, 아빠 없어.

어릴 때 아빠 돌아가셨대.

불쌍하니까 잘해줘.”




그날은 친구 세 명이 나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한 날이었다. 함께 어울려 놀 생각에 기분 좋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다.




그때, 혼자 쫄래쫄래 뒤따라오던 같은 반 남자아이 하나가

세상 슬픔을 다 끌어안은 사람처럼,

안쓰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는지,

아니면 자전거를 타며 놀기로 한 이 시간을 망치고 싶었던 건지, 그 아이의 의도는 알 수 없었다.




아빠 없는 자리에 어느 정도는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깐 멍해졌다.

그리고 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 안 계신 게 그렇게 불쌍할 일이야?

왜 저래? 말할 거면 내가 안 들리게 말하든가.

다 들리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눈치를 봤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 난감함이 그대로 내 얼굴에도 번졌다.




그중 한 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가자! 내가 자전거 타는 거 가르쳐 줄게!”

명랑한 목소리였지만,

그 말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빠가 사고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고,

여섯 살 이후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스스로 밥도 먹지 못했고, 말도 거의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택적 함구증이었던 것 같다.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던 아이에게,

꼭 안아주며 웃으며 인사하고 나갔던 아빠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밥을 떠먹여 줘야 겨우 삼키던 나는

2학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까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소변을 실수해, 엄마가 일하다 말고 학교로 뛰어와

나를 데려가 씻겨 주었던 기억도 여러 번이다.




엄마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밥을 일일이 떠먹여 주었고,

매일 학교에 전화해 우유는 먹었는지 확인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주변 어른들은 한 마디씩 던졌다.

다 컸는데 밥을 떠먹여 준다며 농담처럼 흉을 봤고,

다 큰 애가 똥오줌 실수한 걸 아직도 씻겨 주느냐며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혼내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실수했을 때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그러고 나면 늘 같은 말을 했다.

“때 되면 다 한다. 괜찮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정서적으로 돌봐주기엔 늘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런지, 아빠의 부재가 아이에게 어떤 상처로 남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상처투성이의 어린 나를 생각하며,

밥 먹는 것과 대소변 실수에 대해,

아무 말없이 묵묵히 기다려 준 시간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고 사랑이었다는 것을.




초등학교 6년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아빠의 빈자리에

몸을 맞추며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느린 성향의 내가 유난히 더 내성적이었던 이유를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그 어린 나이에도 밥이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밥이 넘어가지 않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깊게 아빠를 그리워했는지 알 것 같다.




묵묵히 말없이 밥을 떠먹여 주던 엄마의 마음이

이제야 들리는 것 같다.

“그냥 살아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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