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방바닥 여기저기 시커멓게 뒤엉켜 있다.
이웃집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말한다.
“아이고~ 어째~ 저 머리카락들 봐라… 세상에나.
저래 애 머리를 쥐어뜯어 놨나 봐. 쯧쯧”
다른 여자가 웃으며 대답한다.
“에이~ 괜찮아~ 야는 머리숱이 많아서 괜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리 없이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머리숱이 많아서 괜찮다’고 말한 여자는
내 엄마다.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양손으로 꼭 움켜쥔
엄마의 손길을 따라
내 몸은 재빠르게 끌려다녔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가 너무 아프니까.
운동신경에는 잼병인 내가
이럴 때만큼은 유난히 민첩하다.
이건 순발력이 아니라 그저 생존본능인 거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꺼억꺼억 울음을 삼켜가며 애원해도
엄마의 손은 내 머리칼을 놓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이 해소될 때까지.
아무리 빌고 애원해도
끝을 정하는 건 엄마다.
열한 살 아이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아이가 의지할 사람은
세상천지에 엄마뿐이었으니까.
나는 기다려야 했다. 엄마의 감정이 잦아들 때까지.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이웃집 여자가 내게 옷을 새로 갈아입혀 주고 있다.
몸은 딱딱하게 굳은 채, 그저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고 있다.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후드득,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옷을 갈아입혀 주는
이웃집 여자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마치 하수구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정신이 쑥 빠져나가버렸다.
가슴만이 슬픔으로 가득 차올랐다.
슬픔과,
슬픔 뒤에 숨어 있던 분노로 가득 찼던
그 어린 가슴을 치유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무방비 상태로 버텨내야 했던
그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도대체 아이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머리카락이 쥐어뜯기고 맞으며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야 했을까.
잘못을 했다 해도 아이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 여섯 살이었던 나는
말문이 막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때 엄마는 잔소리 한 번 없이 묵묵히 나를 먹이고 씻기며
이따금 이렇게 말해 주었다.
“괜찮아. 때 되면 다 할 수 있어.”
그랬던 엄마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혼자서 어린 남매를 키워야 했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짐작은 간다.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자식을 때리며 키운 일만큼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잘못은 잘못이다.
화난다고 욕하고 때리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거기에는 훈육도, 어떠한 가르침도 없다.
과거와 현재에서 쌓인 감정의 배설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부모는 몸만 자란 어른이 아니라
마음까지 자란 어른이 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는 그대로 대물림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올라오는 수많은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내지 않기 위해 나는 치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자란 환경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건강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기에.
그래서 했던 노력들이 결국은
내 마음도 함께 성장시키고 있다.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쉬운 길 대신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있어서 지금의 내가 고맙다.
스스로 선택한 어렵고 힘든 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쉬워지고,
그만큼 더 깊은 행복을 데려온다.
과거든, 현재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묵묵히 성장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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