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불어도, 우리는 케이크를 만들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상을 지켜내는 법

by 별빛

오래 전, 그날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든다며 들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생크림을 묻히고,

과일을 올리고,

자기들끼리 깔깔 웃으며 분주했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일이 생겼다.


그 사소함이 남편 안에 있던

어떤 깊은 감정을 건드렸는지,


남편은 갑자기

감정을 쏘아붙이듯 토해냈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순간, 거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이들의 웃음이 멈췄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 감정에 함께 휘말릴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물러설 것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선을 하나 그었다.


이 감정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남편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졌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의 감정은 아빠의 몫이야.

그 감정에 대한 책임도 아빠 자신에게 있어.

우리가 해결해 줄 수는 없어.

다만, 기다려 줄 수는 있지.”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였다.


“너희 잘못은 하나도 없어.

아빠는 지금 아빠 감정을 다루는 중이야.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야.”






아이들의 얼굴에서

불안이 서서히 풀렸다.

케이크를 만들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잠시 후 큰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조금 마음이 불편해.”






나는 그 마음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어.

그런 마음 드는 건 당연해.

그렇지만 그 감정의 책임은 네가 아니야.”


아이는 무언가를

확인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날 나는 다시 배웠다.

안도는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 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이 아닌 것을

내려놓을 때 온다는 것을.






한참 뒤, 방에서 나온 남편은

감정이 정리된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만든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맛있네. 고마워.”

아이들의 표정이 환하게 피어났다.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

말로만 설명한 것이 아니었다.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감정이 거칠게 불어와도

그 바람을 그대로

내 안으로 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감정은 전염된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내 삶까지 번지게 두지 않을 수 있다.





감정 분리는

차갑게 돌아서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도 아니다.


그저

휘둘리지 않겠다는 태도,

일상을 지켜내겠다는 결심이다.





나는 아이들이 알았으면 했다.

누군가의 감정이 요동칠 때

그 물결에 함께 빠져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바람은 분다.

숲에서는 고함이 들리고,

물결은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곧 풍랑은 아니다.





그날 우리는 케이크를 계속 만들었다.

웃음은 다시 돌아왔고,

일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삶은 계속된다.

바람이 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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