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_나남
김훈의 『허송세월』은 한 노작가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젊은 날의 분투와 격정이 지나가고, 남은 건 고요와 허무, 그리고 묵묵히 살아가는 일이다.
그는 “세월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다만 흐를 뿐이다.”라고 말하며,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래서 찬찬히 글을 읽다보면 그만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표현할 수 없는 김훈 작가만의 언어적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대신, 세월과 고독, 인간의 품위, 죽음과 삶에 대한 사색이 있다.
그는 늙어간다는 일을 슬픔으로만 보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며, 여전히 ‘사는 일’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허송의 세월이라 부르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그는 쓰고, 걷고, 숨 쉰다.
그 느리고 반복되는 일상이 바로 인간의 존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고 느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김훈은 그 헛됨조차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그는 ‘쓸모 있는 삶’이라는 사회의 기준을 거부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시간조차 인간을 완성시키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에게 허송세월은 패배가 아니라 통과의례다.
나 역시 가끔 삶이 정체된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 날, 무의미하게 흘러간 시간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멈춰 서 있는 그 순간조차도,
결국은 나를 이루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