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초코파이

구일 번 종점 - 종점 슈퍼

by S Hale

땡그랑- 주머니에서 툭하고 동전 하나가 떨어졌다.


100원이었다.


아이는 재빠르게 나보다 빨리 동전을 주웠다.

"어! 엄마 이거 떨어졌다. 100원이네~~"

고작 100원 하나를 보고도 반짝이는 눈으로 '돈이다'하며 줍는

초등학생인 아이가 참 귀엽게 느껴졌다.

"어, 그래 고마워. 너 가질래?"


그러자 아이는 큰 용돈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우와, 진짜? 나 가져도 돼? 아싸!"

기뻐했던 표정이 이내 궁금한 얼굴로 바뀐다.


"그런데 엄마, 100원으로 편의점 가면 뭐 살 거 있어?"

아이가 기뻐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음... 아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100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엄마 어릴 때는 100원으로 살 수 있는 게 진짜 많았는데"


이내 실망하는 듯이 듣던 아이가 '엄마 어렸을 때는~' 하는 말과 함께

호기심의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엄마 어렸을 때는 100원으로 뭘 사 먹을 수 있었다고??"


믿을 수 없는 듯싶으면서도 아직 화폐가치의 변화 등에 대해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에게 엄마의 어린 시절은 마치 조선시대 역사처럼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호기심의 눈빛으로 이내 나의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았다.


"그럼~! 그것도 골라서 사 먹을 수 있었는 걸? 물론 대다수 불량 식품이 100원이긴 했지만,

분명한 건 슈퍼에 가도 100원짜리가 꽤 있었어."


요즘 유행하는 전천당이라는 일본 과자 가게와 관련된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엄마의 어릴 적 과자 이야기라니 '이건 한국판 전천당이다' 생각하는 듯싶기도 했다.


"자 앉아봐, 이제 엄마가 8살 때 100원으로 뭐 했는지 알려줄게~"




지금은 참 오래전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1990년에 태어났다.

내 나이 7살 무렵 단칸방에 살던 우리 가족은 나의 초등 입학 및 단칸방 탈출을 하고자

읍에서 동으로 이사를 갔다.


거리는 차로 약 10분 남짓 거리였지만, 두 동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원래 살던 단칸방이 있던 동네는 ㅇㅇ리로 부르던 동네였다.

대부분이 단층 짜리 다가구였다. 한 대문을 쓰고 그 안에 방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불법으로 방을 좀 잘라서 다가구를 만든 집들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집들이 흔했다.

70~80년대 어려운 시기를 지나 90년대 들어 살림이 조금씩 나아지던 시절이었으니까.



우리 집도 그랬다.

변변치 않은 벌이였지만, 그럼에도 열심히만 일하면 먹고사는데 문제없고.

멋들어진 아파트는 아니어도 내 집 정도는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의 벌이.

그렇다고 사치를 하거나 외식이 일상인 시절은 아니었다.


이사 간 집은 무려 화장실이 있었다.

단칸방에 살 때는 집 밖으로 나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내 집에 있는 우리 화장실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벅찼던 기억이 난다.

양변기를 처음 사용해 본 것이 바로 그때가 아니었다 싶다.


집에서 뜨거운 물을 콸콸 틀어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나에겐 큰 변화였다.

아마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건 우리 '엄마'였을 것이다.


그렇게 난 생 처음 단칸방에서 4인 가족이 함께 자던 우리 식구는

방 3개 화장실 1개 거실과 부엌이 있는 '대도연립'으로 이사를 갔다.


대도연립은 그 시절에도 좀 지은 지 오래된 여립이었다.

어렴풋 기억하기로는 그 연립이 지어진 연도가 70년대 또는 80년대였다고 한 것 같다.


97년도 정도에 그곳으로 이사를 갔으니 이미 약 10년에 20년 정도 된 연립이었을 것이다.


1개 층에 2개의 호수가 살고 있는 2층 짜리 연립에는 모두 네 가구가 살고 있었다.


대도연립 근처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구 일 번 종점'이라는 정류장이다. 원래는 1번 버스의 종점이었는데, 1번 버스 노선도가 확장되면서

이곳은 '구' 일 번 종점이 되었다.


버스 정류 장 바로 앞에는 '종점 슈퍼'가 있다.

5평 남짓 정도 되는 규모였을 것 같은 작은 슈퍼. 그곳이 바로 나의 단골 슈퍼였다.




딸랑- 딸랑 -


"안녕하세요"

7살의 나는 슈퍼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어~ 그래, ㅇㅇ이구나"

슈퍼 아주머니는 내 이름도 안다. 물론 나도 슈퍼 아줌마의 아들들의 이름도 다 안다.

동네 아주머니라서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이거 초코파이요"

나는 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 한 때는 '춥파춥스'통이었던 커다란 사탕통에 동전을 넣는다.

"그래~ 조심히 가라"

"네"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나온다.


한 손에는 내 손바닥만 한 초코파이를 들고서 나왔다.

투명한 봉지에 반짝반짝 윤기 나게 코팅이 된 초코파이.

포장지에는 영어로 choco-pie라고 적혀있다.


비닐을 찢자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매끈한 코팅이 된 초코 파일을 한 입 베어 물자 새 하얀 마시멜로우와

샛노란 빵 그리고 초코 코팅이 입 안에 가득 들어와 춤을 춘다.

기분이 참 좋다~ 나는 한 발 한 발 리듬을 맞춰 뛰는 듯 걷는 듯 걸어가며

초코파이를 먹는다.


동네 언니 오빠, 동생들이 놀고 있었다.


초코파이 한 입 먹고 있는 나를 보자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말한다.


"나도 한 입만!"

아.... 나눠 먹기 싫은데, 그렇다고 안 나눠주면 나쁜 사람이겠지?

7살스러운 생각을 하며 6살 꼬마에게 한 입 준다.


"^----------^ 언니, 고마워"

코찔찔이가 한 입 먹고 나니 그 뒤에 다른 아이들도 먹고 싶다고

한 입만 달라고 한다.


"아.. 나 이제 먹을 거 없는데, 너네도 슈퍼 가서 사 먹어...."


착한 아이 나쁜 아이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먹을 것이 없어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자 아이들은 "야 ~ 그럼 우리도 종점 슈퍼 가자" 하며

우르르 또 슈퍼로 간다.


100원 200원 100원


아이들은 대부분 100원짜리 또는 200원짜리를 사 먹었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 다시 종점 슈퍼에 갔다.


초코파이는 하나 사 먹었으니 뭔가 새로운 간식이 필요했다.

"음, 초코, 딸기, 오렌지... 뭐 먹지.... 아! 여기 있다!"

나는 커다란 춥파춥스 통을 뒤적이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림딸기맛을 찾았다.


주머니를 뒤적뒤적 200원을 꺼내


또다시 춥파춥스통이었던 돈 통에 다시 200원을 넣었다.


"아줌마, 사탕 1개요"


돈 통에 돈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샀는지 아줌마에게

반드시 보고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렇게 동네 아이들이 한 차례 종점 슈퍼를 휩쓸고 갔다.


새로 이 사 온 이 동네에는 아이들도 많고,

슈퍼도 가까워서 정말 좋다.


무엇보다 우리 집은 2층이다.


1층 단칸방에 살고 창문도 없던 집에 살 던 나에게는


2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조차 괜히 좋아 보였다. 사실은 그냥 평범한 골목이었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 보아도 좋았다.



매주 정해진 요일 밤이 되면 트럭 장수가 온다.

수요일은 계란 아저씨.

금요일은 미나리 아줌마.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습니다."

엄마는 종종 오후 8시 정도에 오는 계란 아저씨께 가서

계란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트럭 장수는 계란 아저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란 아저씨가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있는 듯 없는 듯 한 목소리로 녹음한 아주머니의 음성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미나리 왔습니다. 미나리 있습니다. 미나리 한 단에 3천 원"


바로 미나리 아줌마.

우리 동네가 거의 마지막 코스라서 가끔 미나리를 사면

한 단 보다 많이 떨이로 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는 '미나리'를 먹은 기억은 없지만

'미나리 왔습니다. 미나리 있습니다.' 하는 구슬픈 듯 한 그 목소리가


힘차고 자신감 있던 계란 아저씨 보다

미나리 아줌마'의 그 트럭 확성기 소리가 내 추억의 소리처럼 느껴진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야기인데.

90년대 시절에 여자가 혼자 트럭을 끌고 밤에 장사를 하는 것은 쉬운 환경은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도 남편의 지병으로 낮에는 병간호를 하고 저녁에는 미나리를 파는

정말 대단하고 멋진 아주머니였던 것이다.



내가 살던 대도연립 202호는 이런 곳이었다.

도시화가 다 되지 않아서 아직은 사람냄새 가득하던 곳.

잘 사는 사람, 조금 못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 모여 함께 아이들이 뛰어놀 던 곳.


매일 밤 트럭에서 크게 광고하며 물건을 팔아도

시끄럽다고 신고하지 않는 곳.


90년대 나의 집 대도연립.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100원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

"와~ 엄마 나도 그때로 가서 이걸로 초코파이 사 먹으면 좋겠다."


아이는 감동적인 미나리 아주머니의 이야기보다는

역시나 '초코파이가 100원'인 것이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하, 무슨 걱정이니. 우리 집 간식 서랍에 보면 초코파이가 종류별로 있는 걸."


그러자 이내 아이는 엄마 그게 아니지~ 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100원으로 직접 내가 사서 먹고 싶다는 거지."


"그래, 그 마음 알지. 엄마 어릴 때는 7살인데도 막 혼자 동네 돌아다니고 그랬어."


아이는 헐? 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진짜? 엄마 그거 아동학대 아니야?"


생각해 보니 세월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푸하하, 요즘은 약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5살 정도부터 혼자 밖에서 놀다가 들어고 그랬었는데?"


5살 때부터라는 말에 더더욱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뭐? 외할머니 잡혀가는 거 아니야?"


아~ 이것이 진정 세대차이인가 싶다.


"그 시절엔 세 살짜리 아이도 누나랑 놀러 나오곤 했어. 여섯 살 된 아이가 세발자전거 뒤에 태워주면서.

엄마가 살 던 동네에 차가 다닐 수 있는 골목이긴 했지만, 그 골목에 차가 본격적으로 가끔씩 지나가기 시작한 게, 약 3학년 정도즈음? 그러니까 오며 가며 자동차가 한 두 대 씩 종종 지나갔지~ 그 시절에는 그저 할머니 앞마당 같이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다 놀았어. 돗자리 펴놓고."


아이는 정말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와, 엄마 진짜 너무 재밌는데? 또 이야기해 주면 안 돼?"


순간 이 시리즈가 쉽게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계속 말을 하다 보니 목도 아프고 피로해졌다.


"음, 그럼 지금은 엄마가 말을 많이 해서 힘들고,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눕는 날!

그날 엄마가 선물처럼 이야기를 하나씩 해줄게, 어때? "


두 눈이 동그래지며 무슨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 마냥


"알겠어, 알겠어! 그럼 일찍 자는 날에 꼭 해주는 거야? 아싸 오늘 빨리 자야지~"




그렇게 대도연립 202호에 살던 나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어지기 시작한다.




2편에서는 300원 컵떡볶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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