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문방구

90년대 학교 앞 문방구 이야기

by S Hale






우리 집 대도연립에서 학교 까지는 8살이었던 나의 걸음으로는

약 10분 정도 걷는 거리였다.


어른들이야 5분이면 갈 거리겠지만,

이것저것 호기심 많은 8살 아이에게는

지나가는 돌멩이 하나도, 버려진 과자 봉지 하나도

모두 지나칠 수 없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어른처럼 빨리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 있었으니

바로 '문방구'이다.


1990년대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교 앞 문방구는 아이들의 사랑이나 다름없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월요일 아침 문 밖을 나서려고 하면

엄마는 물어봤다.


"오늘 학교 준비물 없니?"

그 시절에는 '알림장'이라는 공책에 직접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며


선생님께서 준비물을 알려주시면 적어서

하교 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준비물을 챙겨가는 방식이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기본적인 준비물도 많이 제공하지만

내가 저학년 일 때만 해도 색종이 1장 조차도 직접 구매해와야 했다.



요즘은 '하이클래스'같은 모바일 어플을 통해

학부모에게 직접 준비물 및 학교 중요 일정 등을 안내하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직접 아이의 손을 거쳐 전달하지 않으면

학부모는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 초등학생은 지금 아이들보다 좀 더

어리바리한 맛도 있었다.


그 말은 즉, 준비물을 잘 챙겨가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많은 편이라

친구에게 빌려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나마 참 다행인 것은 알림장을 학교에 놓고 와도

집에서 나설 때까지 준비물을 잊고 있어도

주머니에 500원 정도만 있으면 걱정이 없었다.


대부분의 준비물이 500원 안팎으로 구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하면 아주머니가 외상도 가능하게 해 주시니

문방구 앞에 가서 같은 반 친구가 무언가를 구매해서 나온다면

"오늘 우리 반 준비물 있어?"라는 물음과 함께

하나 구매해서 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문방구 아줌마'는 정보력이 아주 좋았다.


가끔 엄마가 저녁에 산책 겸 나갔다가 문방구에 들르면

아주머니가 먼저 말한다.


"내일 1학년 준비물 색도화지인데 샀어요?"


"내일 3학년 각도기 준비물이에요."


" 2학년 애들 지점토 준비물이에요." 등등


각 학년마다 교과 수업에 따른 준비물이 무엇인지 아줌마는 다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준비물을 사 온 적도 있었다.


물론 엄마의 돌아오는 잔소리 폭탄과 함께



그 시절 우리에게 문방구 아주머니는 정보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문방구의 역할이 있었다.


가히 초등생들의 사랑방이라고 말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방구에 이른 아침에는 잘 안 간다.


아침에 등굣길에 문방구를 쳐다보면 대부분 거의 전쟁터 상태이다.


아주머니가 계신 계산대 쪽에 아이들이 북적북적 모여있다.


'도화지 주세요.' , '색종이 주세요.' , '10칸 국어 공책 주세요'

'컴퍼스 주세요.' , '지점토 주세요.'


아침부터 준비물을 사가는 수많은 아이들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에 일찍 나왔는지 지각을 하는 중인지는 문방구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 초등생에게는 시간 개념이 좀 더 없기도 했는데,



지나가는데 문방구가 한산하다...? 이것은 틀림없이 지각이다.


아이들이 북적북적해야 '정상 등교 시간'이라는 뜻이다.



아침에 코팅이라도 할 참이면 최소 15분 이상은 일찍 출발해서 문방구에 들러야

코팅을 할 수 있다.


그런 날은 코팅 대기줄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가끔 준비물이 별로 없는 날에는 문방구가 조금은 한산한 아침을 맞이하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참새 방앗간을 들리듯이 문방구에 들렀다.



지우개를 사는 아이, 연필을 사는 아이, 스티커를 사는 아이.

심지어 아침부터 불량 식품이나 과자를 사는 친구도 있었다.



문방구에서 '제티'라는 우유에 타먹는 가루를 판매했는데

1개 100원 아침에 이것을 사가는 친구들도 참 많았다.



학교에서 주는 흰 우유를 그냥 먹는 것은 힘드니

초코가루, 딸기가루 등을 넣어서 먹는 것이다.



그렇게 가루 한 봉지를 사 가도 친구들이

'나도, 나도 ' 하면 조금씩 나눠주는 것이 또 미덕이었다.


나도 그렇게 얻어먹을 때면

초코향이 나는 흰 우유를 마셔봤다.


물론 내가 사서 갈 때면 조금 더 진한 초콜릿 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엔 100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가득했는데

제티는 100원이나 주고 사 먹다니 그것은 나름 '사치'같은 행위였다.




문방구는 그렇게 아침 등교 시간이 지나면

아주머니가 숨을 돌릴 수 있는 쉬는 시간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계속 쉴 수 없다.


맛난 음식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문방구, 문구점에서 음식을 파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떡볶이 집이 아니라

문방구에서 컵떡볶이 사 먹어 본 어린이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요즘처럼 밀키트나 대기업에서 소스가 나오던 시절도 아니다.


'문방구 아줌마표 떡볶이'이기 때문에 문방구마다 맛도 다르다.



하교 후 문방구에 가면 커다란 곰솥 같은 곳에 아주머니가 떡볶이를 끓여 놓고

일반 자판기에서 사용하는 종이컵 한 줄, 슬러시 먹을 때 먹는 좀 더 기다란 종이컵 한 줄


이렇게 두 줄을 갖다 놓는다.


일반 종이컵에 떡볶이를 가득 담아주면 300원.

슬러시 종이컵에 떡볶이를 가득 담아주면 500원이다.


90년 생인 나는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제 막 전국적으로 급식이 시작 되려 했던 때이다.


그래서 나도 저학년 때는 급식을 먹지 않았고 3학년 정도부터

급식을 본격적으로 먹게 됐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은 곧 아이들이 4교시 후 하교를 하는데 배가 매우 고픈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300원만 주면 쫄깃하고 달콤 매콤한 떡볶이를 먹을 수 있으니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 저학년에게 종이컵 가득 떡볶이는 나름 많은 양이기 때문에

친구들을 나눠주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떡볶이도 여름이 되면 아이들이 더워서

좀 덜 먹게 됐다.


그럴 때는 역시 시원한 쿨피스 얼린 것이 인기였다.


쿨피스 얼린 것 200원.


우유팩 모양에 들어있는 쿨피스를 얼려서 구매를 하면

아주머니가 우유팩을 열어주시고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하나 주시면

그것을 긁어먹고 퍼먹고 그렇게 즐기는 셀프 슬러시 같은 메뉴였다.



하지만 200원 짜리도 사실 비싼 편에 속했다.



100원! 그래 100원짜리가 역시 인기다.


그 시절에는 '불량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에게 불리는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100원짜리 식품들이 있었다.



냉동고에 가면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한가득이었다.

조금 사이즈가 작아서 100원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메이저 브랜드들의 상품을 카피한 제품들도 많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죠스바를 카피한 '상어바'이다.


그 시절 죠스바는 지금과 다르게 맛이 좀 더 진하고

먹고 나면 혓바닥이 퍼렇게 물들 만큼 색소와 맛이 강했다.


어느 곳에서 카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어바'는 좀 더 푸른색을 가졌으며 죠스바 속에 달콤한 빨간 시럽은

좀 더 밍밍한 맛이긴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 시절 죠스바는 300원인데

상어바는 100원이었다.


비슷한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인데 3배의 차이라니.



초등생은 맛은 필요 없다.

시원하면 된다.

100원 상어바를 샀다.


'메로나'짝퉁, '죠스바'짝퉁 그러나 절대 우리는 짝퉁이라고 부르진 않았다.

그 회사가 붙여낸 카피 이름으로 불렀다.



그렇게 가끔 어른이 용돈 천 원을 주시면

문방구 가서 아이스크림 10개를 사서 집에 온다.


천 원에 아이스크림이 10개 라니 믿어지는가?


그 시절에는 100원 아이스크림이 인기도 많아서

사실 종류도 꽤 많았다.


심지어 '서주아이스'라는 회사에서도 100원에 판매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서주 아이스의 '살구바'이다.


이것은 네이버 검색으로도 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100원짜리 마이너 한 불량식품으로 불렸던 그 아이스크림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맛이 기억에 생생하다.


상큼한 오렌지 색깔에 셔벗 같은 맛.


이 맛이 궁금하신 분도 많을 것이다. 아주 오래돼서 솔직히 완전히 기억은 안 나지만

최근에 조금 비슷한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자두바'라는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새빨간 자두맛 아이스크림이다.


이 하드가 내가 그 시절 먹었다


살구바와 맛이 조금 비슷하다. 식감이 특히 셔벗 같은 것은 거의 동일하고 맛이 살구와 자두라서

조금 다른 맛 정도였다.


아무튼 내가 가장 좋아하던 100원 아이스크림 살구바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은 아이스크림 중 하나이다.





떡볶이, 아이스크림에 이어 과자 같은 주전부리도 참 많이 판매했다.



요즘도 '그때 그 시절 추억의 과자' 이런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밭두렁', '아폴로', '콜라사탕', '피쳐' , '과일껌', '알라딘'

그렇지만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불량식품이 존재했다.


100원짜리 젤리


콜라모양 포장지를 뜯으면 안에 네모 플라스틱 판 속에 콜라모양 젤리가 들어있다.


100원 과자


과자 역시 메이저 브랜드의 과자를 카피하는 것이 많았다.


100원 치토스, 100원 감자칩, 가끔 양이 좀 많으면 200원이나 받았다.


300원짜리 과자도 있던 시절이라 나름 문방구 과자는 좀 비쌀 때도 있지만

양과 맛이 좋아 그것도 나름의 사치로 종종 사 먹었다.





그 시절 문방구에는 '가스버너'가 하나씩 있었다.


월드컵 쥐포, 똘똘이, 문어발, 호박맛나 등등

여러 건어물을 구매하면 아주머니가 직접 구워 주시기도 했다.


여기서 '문어발' 또는 '오징어'로 불렸던 숏다리 오징어와 비슷한 사이즈의 오징어가 있었는데


이것은 200원으로 나름 큰맘 먹고 사 먹는 주전부리였다.



이 오징어를 구매하면 아주머니가 커다란 비닐 속 오징어 중 하나를 골라서

가스버너에 '착'하고 올려주신다.


불을 켜자마자 문어발은 이리 굽히고 저리 굽히고 마침내 다 굽히면

'벼룩시장'같은 각종 무료 신문을 잘라놓은 신문지 종이 몇 장으로

아주머니가 말아서 주신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라는 말과 함께 그것을 받아 들고 따뜻할 때 하나 찢어먹으면

아직 따뜻해서 말랑한 오징어. 그와 함께 오징어가 타서 솔솔 풍겨오는

탄 냄새, 짭조름~ 달콤한 그 맛이 하굣길 나의 즐거움이었다.


친구들 없이 조용히 갈 적에는 하루 종일 다리 8~10개가

나의 즐거운 주전부리가 되는 것이다.



월드컵 어포와 호박맛나 그리고 쫀드기 등은 요즘도 마트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 시절 가격은 아니지만, 나는 월드컵도 참 좋아했다.


얇은 어포 같은 것을 불에 구워주면 그것이 또 바삭한 맛이 있는 어포가 된다.


100원인데도 얇아서 크기가 크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듯 한


착각과 함께 똘똘이는 구워주지 않지만, 월드컵은 구워주시기 때문에


'구운 맛'때문에 참 좋아했다.



호박마차, 호박꿀맛나, 꿀쫀드기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던 호박꿀은

안에 달콤한 설탕 시럽이 들어있다.


굽지 않고 먹으면 그냥 호스를 씹는 듯 한 고무맛이 나지만,

살짝 버너에 구워주면 그것이 부드러워지면서 안에 있는 호박꿀 시럽이

따끈하고 달콤하게 감싸준다.


달달한 음식이 좋은 초등학생에게는 꿀맛이었다.



사실 이렇듯 하나하나 불량식품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더 풀 수 있을 만큼


그 시절에는 불량식품이라 불리는 과자, 사탕, 아이스크림 등을 많이 먹고 자랐다.



그 시절에는 엄마 눈치 보면서 사 먹었고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서 불량식품이 아닌 '과자, 아이스크림'도 잘 먹이지 않는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들이 알면 참으로 놀랄 것 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 문방구는 모두 사라졌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문방구가 있던 자리 모두 다 인도가 되어있었다.


사진을 찾으려 해도 이젠 너무 오래돼서 그곳의 사진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가도 볼 수 없는 나의 대도연립과 나의 무궁화 문방구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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