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철학적 탐구
나는 왜 죽지 말아야 할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이미 인생이 커갈수록 고통만이 늘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는 교과서 맨 앞장 비어있는 페이지에 인생 계획을 적었다. 20살까지 놀고먹고 부모님 밑에서 살다가 성인이 되어 책임에 의한 고통이 커지는 순간, 인생을 그만두기로.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삶에 가치를 부여할 이유가 있는가?
삶에 천부적인 가치는 없다. 무한하게 생명을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본능 빼고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만을 따라 살 정도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개체들이 아니므로, 삶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보이고는 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무엇이 당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나?
쇼펜하우어는 삶을 근본적으로 고통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의 원천을 내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 외부의 것은 변하거나 파괴될 수도 있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온전하고 지속가능한 행복의 원천은 오직 자신 내부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이 입장을 지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내 내면에는 삶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내 신체가 행복보단 고통에 민감하기 때문일까? 내 내면에서 행복의 원천을 찾고 그것에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즉- 내 삶의 의미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학교도 가지 못했고, 2년 동안 매주 꼬박꼬박 맞춰 갔던 정신과에도 갈 힘이 없었다. 그냥 방에 박혀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바로 자취방 옥상으로 올라가 투신자살을 하지는 않았다. 왜냐, 죽음은 내 의식의 종결이고 무의 상태가 되는 것인데 그러한 상태보다는 고통이라도 함께하며 내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판단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절망한 것은 단지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내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그것의 무가치함에 허무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는 내 사고의 흐름을 재검토했다. 내가 받아들인 가정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를 탐구했다. 삶의 가치, 의미를 내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기본가정을 의심했다. 그 결과, 나는 삶의 목적을 내 외부에서 찾으면 안 되는 이유인 "외부의 것은 내가 통제 불가능하며 변하거나 파괴될 수 있다."를 부정하게 되었다.
1. 일단 내 내부조차 내 통제하에 완전히 제어되지 않는다. 나는 감정과 외부 환경의 자극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존재이다.
2. 외부의 것에서 찾은 삶의 의미, 가치, 목적이 변하거나 파괴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명제는 당위성이 부족하다.
위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삶의 목적을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입장을 부정했다.
그래서 나는 삶의 의미이자 가치이자 목적을 외부에서 찾기로 했다. 비록 그것이 가변성을 띄더라도, 파괴되더라도 다시 다른 것을 찾아내면 된다.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예를 들어 좋아하는 웹툰의 다음 편을 보고 싶다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거나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거나. 그런 것들이 삶의 의미가 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기존의 삶의 목적이 사라지더라도, 다른 의미를 또 찾아내면 된다.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지난주 목요일부터 이번 주 월요일. 총 5일이 걸렸다.
나는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내 IQ가 높아서도, 학력이 높아서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목적,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아무도 이러한 것에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게는 그러한 생각이 당연했기에. 엄마나 아빠에게 이러한 내 고민을 얘기하면 공감해 주지 못했다. 친구들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많은 철학가들을 보면 세상에는 나를 제외하고 삶의 의미, 목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 결론이 그들에게 답변이 될까?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한 번쯤 했을지도 모른다. 왜 살아야 하지? 왜 내가 내일 눈을 뜨지 못하면 안 될까? 그러한 질문과 고민에 대해 내 답변은 너무 가벼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에 잠시 삶의 의미를 맡겨라. 그것을 이루든 아니면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든 그것은 당신에게 잠시 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하고 싶은 것과 작은 목적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그냥 작은 것을 이뤄내 가며 사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다음 주에 주문한 식물이 오는데, 잘 키워보고 싶어서.
2. 친해지고 싶은 여자애가 생겼는데,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좀 더 만나보고 싶어서.
3. 좋아하는 웹툰의 다음 화가 보고 싶어서.
4. 좋아하는 유튜버의 다음 영상이 기대되어서.
5. 이 글을 읽고 반응해 줄 당신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삶의 목적과 의미에 고민이 있다면 크고 웅대하고 엄청난 것이 아닌, 작고 사소하고 부끄러운 것이라도 좋으니 한 번 생각해 보자. 어쩌면 당신은 죽기 전에 못 먹은 밥도, 못 이룬 꿈도 아닌 결말을 보지 못한 웹툰의 다음 화가 생각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