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에 대한 회고: 순수한 인간성의 회복

발터 벤야민『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읽고..

by 마음의 고고학

1933년 발터 벤야민은 당시 전운이 깃든 고향땅 독일을 떠나 파리로 망명하게 된다. 망명길을 떠나기 전부터, 벤야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쓰기 시작한다.



@ 벤야민은 자신의 고향땅에서 조차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불평등을 겪으며, 극단적으로는 생존에 위협마저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까지 시달리며 수차례 자살시도마저 한다. 벤야민에게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은, 어쩌면 앞으로 겪을 향수병에 대한 예방접종이었을지도 모른다. 벤야민은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 체류하게 된 1932년에 내게는 태어난 도시와 꽤 긴, 아마 영원한 이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나는 예방접종 조치가 나의 내면의 삶을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음을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 한편, 벤야민이 그리워했던 유년시절의 배경, 곧 베를린의 당시 상황도 결코 밝았던 것만은 아니다. 사실 19세기말부터 베를린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파편화되기 시작했다. 실상 벤야민의 유년시절 또한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시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의 회상에는 일체의 위기의식이나 어려움, 슬픔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벤야민은 ‘나비채집, 찬장, 여행’ 등과 같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들을 담담히 회상하려 할 뿐이다.



@ 유년시절은 흰 도화지와도 같다. 어떠한 시대적 분위기도, 사회적 불의도 덧칠해지지 않은 백지인 것이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내면은 인간 내면의 근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유년시절의 추억은 단순한 기억내지 스쳐간 과거가 아니다. 이는 순수한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기억인 것이다.



@ 그런데 태어나면서 죽기까지, 인간은 시대와 사회가 만든 여러 불순물들에 오염된다. 그리고 이 오염 속에서, 인간은 도리어 차별, 냉대, 증오 등. 인간성 그 자체를 위협하는 불순물들을 잉태해가는 주체로 돌변한다. 마치 순수한 인간성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와 사회의 자녀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침전물들에 오염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한 나를 되찾고 싶어도,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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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벤야민은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동경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안에 깊숙이 가라앉아 망각된 것일수록 더욱 더 그것을 잘 이해한다.”

시대와 사회로 인해, 아무리 인간성이 파편화되더라도,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동경은 결코 완전한 망각 상태가 될 수 없다. 기억의 저편에서, 흐릿한 유년시절은 도리어 순수성을 긴급히 부르짖는다. 결코 무시할 수 없이, 애절하게, ‘순수한 나’로 회복되기를 부르짖는 것이다.



@ 이처럼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은 순수한 인간성으로의 회귀이다. 결코 사실적·총체적 차원에서의 기억 회복의 시도가 아니다. 또한 애틋한 유년시절에 대한 감성적 차원의 동경 또한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시대와 사회로 인해 파편화된 인간 근원성에 대한 회복의 시도이며, 어떠한 불순물이 끼지 않은, 순수한 나로써의 회복인 것이다.


“땅을 파듯이 기억의 내용을 파헤치는 것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기억의 내용 내부에 진짜 귀중품들이 묻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귀중품들은 아주 꼼꼼한 탐사를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 벤야민은 우리 모두가 내면의 고고학자가 되길 바란다. 유년시절 안에 묻혀 있는 귀중한 보물, 곧 순수한 인간성을 발굴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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