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탐정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찾아가며, 행방불명인 부모를 찾는 여정을 다룬다. 1900년대 초, 중국 상하이는 여전히 아편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암울하고 음산한 도시 상하이에서,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 뱅크스는 연유도 모른 채, 한 순간에 부모님을 잃게 된다. 다만 짐작만 갈뿐이다. 뱅크스의 기억에 의하면, 어머니는 ‘아편 반대 캠페인’을 주도했다. 이 캠페인 때문에, 어머니는 간혹 아버지와 다투기도 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 아편과 관련한 문제로 부모님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라 뱅크스는 확신한다.
@ 고아가 된 뱅크스는 영국의 이모집에 보내진다. 그리고 조용히 탐정이 되고 싶은 꿈을 키우며 학창시절을 보낸다. 성인이 된 뒤, 몇몇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되면서 뱅크스는 런던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탐정으로 급부상한다. 그리고 ‘세라’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된다.
@ “어떻게 지내나, 얘야? 네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우연히 체임벌린 대령을 만난다. 이 만남을 계기로, 뱅크스 수사의 목적은 부모님의 행방을 밝히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뱅크스는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상하이에서의 유년 시절을 추적하며, 흩어져 있던 기억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그리고 뱅크스는 부모님의 묘연한 행방에 관한 확실한 단서를 찾기 위해, 세라와 함께 상하이로 떠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의 행방에 핵심 단서를 제공해줄 만한 인물 ‘필립 삼촌’을 만나게 된다. “뱅크스. 그런데 진실은 말이다. 그보다 훨씬 진부하단다..” 뱅크스는 필립 삼촌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듣는다. 그의 아버지는 아편 수입에 맞서다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분이 아니었다. 중국에 아편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일했던 자이자, 정부(情婦)와 바람이 나서 아내를 버리고 홍콩으로 도망친 자였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의 경우, 당시 상하이에서 아편무역을 독점했던 왕 쿠에게 납치되어 그의 첩이 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왕 쿠의 첩이된 대가로, 뱅크스가 영국 런던에서 부유하게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 분명 부모님과 관련한 사건이 추악하고 슬플 것임을 예견했으면서도, 뱅크스는 그 아픔을 온 몸으로 인수하며 목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끝내 홍콩 요양원에 버려진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치매로 인해 다른 것들은 기억 못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뱅크스의 애칭이 ‘퍼핀’이었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퍼핀.. 그 아이는 걱정 덩어리에요” 어머니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슬픔과 우울로 얼룩져있던 뱅크스의 긴 방황은 마무리된다.
“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사라진 부모의 그림자를 오랜 세월 뒤쫓으면서 고아로서 세상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가슴 찢어질 듯 한 잔인한 진실을 마주했음에도, 뱅크스는 의연하다. 절대 회귀할 수 없는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鄕愁)는 어쩌면 그의 삶의 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결핍과 공허가 오히려 그를 ‘계속 살도록 독촉 했다’. 극심한 소외감과 슬픔 속에서도, 그 향수는 오히려 그로 하여금 어둠과 슬픔, 소외감을 맞서 싸우게 했던 것이다.
@ 우리 역시, 각자 공허감과 어떠한 결핍을 내면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 말이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 역시도 태어난 순간부터, 고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공허를 어떻게 채우느냐, 우리 삶의 숙제라 생각한다. 어둠이 짙은 만큼, 생의 빛깔은 더욱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결핍과 공허는 결코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없다. 우리 삶이 찬연히 빛낼 무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