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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고고학 Nov 13. 2022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태도를 바라보며.. : 무사유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 프로젝트 ‘최종해결책’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종전 15년 만에 체포된다. 1961년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에 참관하게 된다. 이 재판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단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책임자로 보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재판 중에 보여준 그의 태도와 말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의구심을 갖는다: ‘과연 저렇게 일상적인 그리고 평범한 남자가 어떻게 ‘최종해결책’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모든 명령에 복종하며 항상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였고, 이에 자부심을 가진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그는 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를 성실하게 임했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이 삶에서 실천한 도덕 법칙은 나치에 의해 왜곡된 도덕 법칙을 이해하고 실천했을 뿐인 것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행위는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 나치는 자신들만의 언어 규칙을 만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나치는 ‘최종 해결책’을 실행함에 있어 유대인 절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언어규칙을 고안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렌트는 나치의 언어 규칙은 나치 본인들이 하는 일을 은폐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하는 일의 심각성에 대해 망각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으며 인간성을 말살시켜 권위자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 관청용어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입니다” 아렌트는 그의 언어능력이 상투어가 아닌 다른 말을 할 줄 모르는, 즉 ‘말하는 데 무능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말하기의 무능성은 ‘사유하는 데 무능성’과도 연결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말하기의 무능성은 타인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고, 사유하기의 무능성은 그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하게 했다고 아렌트는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이 거짓말쟁이여서가 아니고, 그는 타인들과는 괴리된 나치즘이 형성한 ‘분위기와 말’ 속에 의탁하여 사유했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오로지 권위자의 명령에 따르는 존재로 만들었다.


@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왜 사유 활동을 중단했던 것일까? 아렌트는 이를 무사유한 인간의 모습 속에 일상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악의 평범성’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악이란 특정한 악인에 의해서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연약함’을 지니기 때문에 악은 일상적이며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 그의 모든 정신 상태가 정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함’을 발견했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를 검사하였던 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그는 ‘정상’이었고, 심지어 그가 자신보다 더 정상적이라고 보았다. 악의 평범성으로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사고와 성찰 없이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유 없는 성실함 속에서, 아이히만은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에게 사유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이 아무것도 행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이어지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활동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 사실 사유라는 활동은 사회적 지위 상승이나 지적 욕구 충족에 별다른 성과를 가져오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유하지 않는 삶은 인간과 삶 자체의 본래적 의미와 가치를 발전시킬 수 없다. 사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무수한 고통과 갈등의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써, 그러한 문제에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성찰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인간사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의 핵심을 직시하고 함께 나누며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데 도모한다. 즉,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순응하기 보단 그러한 현실에 맞서 정의를 부르짖는 것이다. 때문에 사유는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모습을  통해 무사유가 어떤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경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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