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히 타자일 수밖에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일인칭 단수』를 읽고..

by 마음의 고고학
“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IMG_9197.jpg 서울 혜화동 낙산자락


@ 10년 전,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 스스로조차도 알아주지 않는 퀘퀘 먼지 가득한 내면의 깊은 방에 들어간 느낌. 그 방엔, 깊은 상실감이 아주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겐 커다란 슬픔이 존재했다는 사실, 절친한 친구 사이에도 말 못할 아픔이 있다는 사실. 적막감 속에서, 상실감이 자리한 기억들을 위태롭게 마주했다. 깨질 것만 같은 기억들에 어찌할 줄 몰라, 내 내면으로부터 도망쳤다.


@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낯선 마음을 마주할 때가 있다. 다 아는 것 같고, 익숙한 세계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이 세계에 나 홀로 던져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어도, 둔한 언어와 표현은 내가 온전히 느끼는 감정들을 실어 담을 수 없다. 오직 나 스스로 감내해야 만 할 삶의 숙제인 것만 같다. 상실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으며, 슬픔은 오히려 전보다 더 깊숙이 마음에 남아버린다. 삶은 늘 새롭고, 낯선 체험 현장이다.


@ 근래 하루키의 신간 『일인칭 단수』를 읽게 되었다.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책은,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세계를 담고 있다. 이 세계는 단절의 세계다.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현실. 세상 안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세상과 나, 그리고 너와 나는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다는 외로운 사실. 나와 너는 단지 ‘일인칭 단수’일 뿐이며, ‘우리’로서 ‘복수’가 될 수 없다는 슬픈 사실.. 상실감은 이렇게 철저히 ‘나’를 세상과 나 사이, 너와 나의 여백 안에 가둬버린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단절된 세계 속에서, 홀로 외롭게 아픔을 감내하고 슬픔을 꾹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어도, 언어라는 벽은, 고스란히 내 감정과 세계를 전달하지 못한다. 우린 각자 ‘나’라는 세계에 묶여있는 것이다.


@ 그러나 나와 세상 그리고 너 사이에 놓여있는 ‘몰이해’가 오히려 희망을 남겨준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이해하진 못하지만,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진심’을 마주한다. 세상은 수많은 오해와 몰이해가 넘쳐나지만, 사실 그 오해와 몰이해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16화사랑은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