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의 시詩, '남남'
나와 너 사이엔, 거스를 수 없는 간격이 있다. 나, 너. 서로에게 남일 뿐이다. 나는 너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 너 역시도 나의 슬픔을 모른다. ‘너’라는 응답 없는 부름 속에, 고독한 그림자만 자리한다. ‘나’라는 이해 속엔, 더 이상 ‘너’는 없다. 문득 너가 낯설다. 너는 진공상태. 파편화된 내가 구성한 공허한 실체. 어쩌면 나와 너는 각자의 ‘철저한 고독감’에 질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너에게 닿고 싶고, 나를 내어주고 싶어, ‘우리’로써 갈망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나와 너는 이뤄질 수 없는 그리운 꿈이다.
@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 고립된 자아에 관한 시를 쓴 조병화 시인. 시인에게 ‘타자’는 순수의 길이다. 자아가 철저한 고독감 속에 몸부림칠 때, ‘타자’는 자아에게 고요한 위로가 된다. 그 위로 속에서, 자아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한다. 슬픔과 분노, 아픔을. 그리고 타자 역시 고립된 자아라는 역설을 마주한다.
@ 철저한 고독과 고립 속에서, 우린 결코 닿을 수 없는 타자에게 순수한 이해와 공감을 원한다. 그럼에도 우린 절대 타자에게 닿을 수 없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간극에 남아 있는, 오직 그리운 꿈만이, 그 알 수 없는 “순수한 공허”만이 우리에게 순수한 치유와 사랑이 될 수 있다. 조병화는 이 순수한 공허를 찾으려, “남남”이라는 제목으로 시 55편을 작성한다.
"네 대륙이고 싶어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는 네 하늘이 되고 싶어라.
울타리도, 칸막이도 경계도 없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있는 건 오로지 생명, 희열, 영광, 무한, 사랑과 신뢰 끝없이 피어 만발한 빛의 물결, 그 대륙이 되고 싶어라.
피곤에 지친 영원한 네 휴식. 그 푸른 풀과 바람.
그 둥우리가 깃들어 있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조병화 – 남남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