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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고고학 Jun 22. 2023

역사관에 대해서 - 유대/그리스도교 역사관과 발터벤야민

 최근에 '역사철학' 수업을 들으며, 떠오르는 것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남기고 싶다..

(유튜브에 관련 주제 영상이 있어서, 남긴 댓글인데, 버리기 아까워서 브런치로 옮겨봄.

댓글에 썼던 글이라 구어체임.)


서양철학 안에서 '역사'에 대한 관념이 시작되는 시기를  그리스도교의 태동시기로 보는 것에, 참 흥미로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과거'의 사건을 토대로,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비추어보는 사고습관이 익숙하지만, 2천 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사고는 굉장히 새로운 유형의 사고였다는 것이죠.  조금 더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리스도교가 뿌리 내리고 있는,  유대교의 역사인식에 그 근거를 둔다고 보네요.  


 유대교 시선에서, '자신들의 과거 역사/과거 사건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보는 것'이 그들의 역사인식이라는 것. 우리나라 번역에서는 그 의미가 살지 않지만, 히브리어에서 예언자를 뜻하는 '나비נָבִיא'라는 단어의 기원을 보면, 예언자의 기능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부르심을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 무엇보다 모세를 통한 이집트 탈출 사건과 그 사건을 계기로 받은 '율법'을 끊임없이 읽고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유대인들의 예언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지나간 과거에서 신의 섭리, 신의 손길을 발견하며, 그 안에서 신의 뜻을 발견하면, 앞으로 자신들에게 일어날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종국에 가서 인간 역사의 성취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인류에게 전한 율법의 완성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이들의 역사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대전통이 그리스도교로 흡수되며, 훗날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과거를 통한 역사 이해'가 서양철학의 역사관에 단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모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넣어보면, 그리스도교 역사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입장에선, 모세는 옛 계약의 전형이고, 예수는 옛 계약, 바로 모세를 뛰어넘는 새계약의 전형으로서, 인간역사는 바로 예수의 부활처럼 종국에 가서 예수를 통해 인간 역사가 집약되고 구원 받는 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역사관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탄생 이전, 서양철학이 태동한 고대 그리스 안에선, 특별한 '역사관'이 없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고대 자연철학자들부터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스토아학파까지, 이들 사상의 핵심을 꿰는 포인트는, '영원성, 세상의 이치와 원리'에 대한 사고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도 세상창조에 대한 사고를 시도했지만, 이는 엄연히 형이상학적-논리적 바탕에서, 세상창조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가능세계적 차원의 답변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을 기초로, 위에서 언급한 유대-그리스도교 역사관의 전통이 제대로 뿌리 내리게 되고, 이 역사관은 르네상스 시기까지 획일적으로 이 역사관을 기초로 인간 역사가 해석 되옵니다. 그러나 근대 시기부터, 이 역사관은 도전받기 시작하고, 크게 두 갈래 형태로 역사관이 나눠지게 되지요.


 첫째는 앞서 말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의 역사관이, 소위 세속화(종교적 색채가 없어진) 되어, 계몽주의적 역사관과 낭만주의적 역사관 형태로 나뉘는데, 이들 모두 근본적으로 인간 이성의 완성이 바로 역사의 정점이자 완성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 관점이 칸트에게 넘어가고, 이것을 헤겔이 종합한 것이 '변증법적 역사관'입니다. (칸트도 개신교 영향 아래 있었기에, 역사의 완성은 인류의 정신적 완성이라고 보았습니다. 바로 윤리 도덕의 완성으로 말이지요. 아울러 헤겔 또한 신학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그의 역사관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의 진보 개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대화 개념은 바로 유대-그리스도교 역사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흐름 속에서 '발터 벤야민의 역사관'도 이해할 수 있겠지요.(그런데 벤야민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값진 시선을 던져줍니다)  


둘째는 근대의 과학혁명 이후, 과학적 연구와 방법론의 질적 변화와 진보를 계기로, 경험주의적 차원에서의 역사관의 등장입니다. 위에 언급한 유대-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은 심히 도전 받게 됩니다. 이 두 번째 역사관의 정점이 바로 랑케의 역사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과거는 그저 지나간 과거이고 우리가 소급해볼 수 없다'는 역사관의 창시자가 바로 랑케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랑케의 역사주의가 탄생한 배경을 영향사적으로 분석해보면, 그 기원은 사실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모든 영역을 과학적 탐구 방법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신학에도 탈신화화 작업이 착수됩니다. 그 영향 아래서, 이런 과학을 바탕으로 한 역사 방법론이 질적으로 발전됩니다.(재밌는 사실은,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보면, 앞서 언급한 '예수의 역사적 실존성'에 대한 질문은, 종교개혁 이후, 독일 북부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적 성서 해석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서를 자유롭게 읽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의 실존성'에 대한 의심으로 나아가게 된 아이러니이지요.)   한편 첫째와 둘째 방법론을 잘 섞은 역사 해석 방법론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신학에 기초로 한 방법론을 기초로 합니다. 다들 들어본 '해석학' 방법론입니다. 이 기원은 슐라이어마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딜타이를 거쳐 '하이데거 - 가다머'에 이릅니다. 하이데거-가다머부터 탈종교적 차원에서 해석학적 역사관을 제시하지만, 사실 영향사적 차원에서 엄밀히 따져보면, 이들 또한 방법론과 '단어'만 종교적 색채를 없앴을 뿐이지, 사유구조와 방향성은 첫째 방법에 근접합니다.


  앞서 바라본 역사관 둘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라고 예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각각 나름의 가치와 고유한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 유대-그리스도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의 가치는 '보편적 인류애, 인류애적 가치'를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탈신화화된 차원에서, 인간 역사의 발전은 결국 인간의 온전한 자유가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현대를 돌아보면, 잠시 역사적 후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영적/정신적/문화적 부재를 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역사관의 목적은 결국 인류의 정신적 성숙, 정신적 완성입니다. 반면 이들 역사관의 단점은 바로 관념주의적 한계, 바로 유아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현재 역사가 미래를 향한 발전인줄 알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관념론적이며, 이것이 극단에 이르면, 관념론의 아킬레스건인 유아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둘째는, 탈신화화/탈종교적 차원에서, '엄밀함, 객관성'을 따진다는 면에서, 어떤 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들 역사의 발전과 해석은 유물론적인 해석에 기초합니다.(이 노선의 학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역사 발전과 해석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보려 한들, 과거에 우리가 온전히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불가지론의 영역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이들 역사관의 한계는, 역사를 파편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으로 여기고, 지나간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의 의미를 찾기보단, 그저 지나간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의미'를 찾는 것은, 현재의 선입견이 개입될 수 있기에,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저 '과거를 재현'함으로써, '과거엔 이랬다 저랬다'에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큰 맥락 안에서, 발터 벤야민의 역사 철학의 자리는, 아무래도 유대-그리스도교적 전통에 위치하겠지요. 그럼에도 그의 역사관이 새로운 것은, '기억'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제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무엇보다 그는 거시적/보편적 차원에서의 역사 해석보단, 미시사적 해석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상대적 해석 또한 존중합니다. 달리 말해, 개인의 기억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역사학은 주로 시대의 보편성에 치중하고, 역사의 보편성 안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바라보았습니다. 한편 벤야민 또한 과거에 대한 가치와 역사 해석에 대한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역사를 단순화/일반화 시키려는 보편성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역사 아래 있는 다양한 개인들과 그 복잡스러움과 역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우리들 기억으론 1/2차 세계 대전에는, '죽음과 공포'만 있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개인 간의 사랑, 혹은 질투, 욕망 이런 것들이 역사 안에 혼재해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는 계기는,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하나의 역사적 사건의 촉발이기보단, 개인 안에서, 개인의 실존 안에서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다양한 개인의 욕구와 욕망이 뒤섞이는 가운데, 우리 역사는 좌충우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2) 한편 더 나아가 개인의 기억에서, 보다 순수한 인류의 모습을 찾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는 유대교적 방법론의 탈종교적 맥락에서, '실존적으로 승화시킨 역사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란만장한 유대교 역사 안에서, 이들은 큰 역경을 겪을 때면(이를테면, 이집트 탈출사건, 바빌론 유배 사건), 다시 순수한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하느님 뜻을 살피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율법인 신명기에서도 볼 수 있듯, 계명 안에, '한 때 너희들도 불쌍한 유목민이었던 시절을 잊지마라. 다른 불쌍한 민족들을 멸시하지마라'라는 계명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자신들의 하느님 구원 사건 이전의, 죄의 현실? 비구원의 암울한 현실?인, 바로 흑역사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자신들을 정화하려고 했다는 것이지요.  벤야민은, 인류애의 회복 차원에서, 개인의 순수한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것을 제시합니다. 그가 남긴 저서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이런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한데, 마음을 고고학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 때 순수하고 미움 없고 어려움 속에서도 순수한 기쁨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개인의 역사적 성찰이고, 역사적 성찰은 단순히 거시적으로 시대적으로만 할 것이 아닌, 우리 인간 개인 역사 실존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점에서 저는 벤야민을 참 좋아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문학과 철학의 경계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의 잘 정제된 언어가, 생동적인 개인의 실존을 상쇄시켜, 본질만 직시하게 한다면, 문학은 복잡스러운 일상을과 기억들을 사사로운 언어로 재현시켜 우리를 마주시킨다는 점에서, 둘의 매력이 큽니다.)  벤야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벤야민 삶 자체가 기구하기에, 그의 삶과 사상에 더 관심이 갑니다. 벤야민의 죽음에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만(피레네 산맥에서의 자살, 혹은 스탈린이 보낸 첩보원에 의한 피살 등이 있습니다)


저는 벤야민이 정말 현실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정말 천사같은 영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어떻게 죽었든, 그의 순수성, 역사와 현실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려고 했다는 점과 더불어 당시 어두운 역사 안에서도, 인류애를 져버리지 않고, 인류애의 회복에 자신의 사유로 투신했다는 점, 당시 여러 천재 학자들이 인정할만큼 뛰어난 학식을 가졌음에도, 당시 강단철학의 정치를 하지 못해, 교수임용이 되지 못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사유를 기록하고 전하려했다는 점에서, 정말 순수한 인간성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마음이 지치거든, 벤야민 글을 읽곤합니다.


벤야민의 관점은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그저 흘러가는 시간으로 바라보며, 역사적 연도를 외우는 식의 단순화된 교육 방법론을 고수해야하는가?


 우리가 현재 발딛고 있는 현실도 역사이고, 우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역사라는 점에서,  벤야민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개인의 실존을 역사적으로 탐색하는 마음의 고고학'과 '개인 역사에 대한 관심'을 우리가 마음에 품고, 사유해보는 것이 어떨가 싶습니다.  특별히 한일 관계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바로 이런 온전한 개인의 차원에서의 역사적 숙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간혹 인터넷에서, 저희와 같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모욕하는 것을 보면 참 슬픕니다.  더 나아가 이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세월호/이태원 사건 등 우리가 역사적으로 개인의 삶 안에서 실천적으로 바라볼 여러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를 돌이켜보면, 아픈 과거일 수 있으나, 우리가 나아갈 순수성, 인류애의 차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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