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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고고학 Jun 22. 2023

세 줄 요약 부탁?

요새 유튜브를 댓글들을 보면, 이런 댓글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세 줄 요약 부탁" 혹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한 줄 요약 좀". 혹은 '누군가의 댓글에 대한 충고 및 과한 가르침'을 엿보게 되곤 합니다. 이런  댓글을 보면, 조금 맥이 빠지곤 합니다. 어떤 과학적 지식이나 자연적 사실들을 다루는 내용이 아닌 이상, 특별히 삶에 관해 다루는 철학적 지혜의 경우, 그리 쉽게 '한 줄 요약 내지 세 줄 요약'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런 요약이 필요하다면, 아주 잘 요약된 철학자들의 명언집을 사서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과하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유럽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제가 다니는 학교는 시험을 교수와 구두 시험을 봅니다. 짧게는 15분 길게는 30분 가량 토론이 이어집니다. 수업의 핵심 사상을 요약해서 준비해가면, 교수는 도리어 제게 묻습니다. '그래서 당신 생각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세요'. 교수는 제게 '정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얼만큼 사유했는가? 달리 말해, 얼만큼 질문하고 고민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참 많이 배우게 되네요. 정답이 중요한 자연과학적 지식의 경우와 달리, 삶과 관련된 철학적 사유 내지 실존적 지혜의 경우, '얼만큼 고민하고 헤매고 자기 스스로 답을 해나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줄 요약? 세 줄 요약 문화'는 어쩌면 한국인들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소양이기보단, 어떤 사회적/문화적 맥락 안에서 생겨난 사고구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답만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된다, 효율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사고에 따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회에서 태어난 개인은 다시금 그 사회의 사고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악한 사고 순환구조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자연스레 효율적이지 못하면 뒤쳐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누군가 느리게 행동하거나 실용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면 답답한 마음이 들어 가르치려고 드는 문화의 사이클이 계속 유지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각자 삶이 다르고, 처한 환경과 배경/출신/성향이 다른데, 어떻게 정답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 모두가 삶에 대한 태도를, 누군가 '잘 요약한 하나의 정답'으로 일괄적으로 수렴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 2030 세대들의 불안과 우울의 근간은, '정답을 찾도록 하는 요구 받는 교육과 효율과 실용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너무나도 잘 아시는 진부한 결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사회가 우리에게 '방황하고 헤맬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는 것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방황하는 가운데, 우리는 통상 사람들이 바라고 선망하는 이 사회의 일반화된 욕구로부터 잠시 벗어나,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란 질문과 더불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타자화의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헤매는 가운데, '자기 객관화'를 하게 됩니다.  얼만큼 방황하고 헤매냐하는만큼, 조금 더 자신에게 진솔해지고,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됩니다. 행복만큼은 자기 내면화되지 않는 이상, 타인의 행복을 쫓는다고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방황하고 헤매는 과정 모두가 행복을 자기내면화하는 과정이라 생각이 들고,  이것이 바로 사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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