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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회계의 중요성

by svalueup

회계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한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기업 규모와 성장 단계에 따라 회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회계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존재하는데, 오늘은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https://m.blog.naver.com/s-valueup/223282571413


스타트업의 회계 인식, 현실은?


일반적으로 기업은 규모와 상장 여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대기업군

대기업 외 상장기업

비상장 중견기업

비상장 중소기업

소규모 기업


이 글에서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속하는 하위 두 그룹(비상장 중소기업, 소규모 기업)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스타트업들의 회계에 대한 접근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회계보다 핵심 사업이 최우선이다. 회계가 우리 사업 성장을 방해해선 안 된다."
"회계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전문 인력을 확보할 여유가 없다."


이 두 관점은 결국 '회계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인식으로 귀결됩니다. 왜 이런 생각이 스타트업 세계에 만연할까요?


스타트업 회계를 뒤로 미루게 되는 이유


1. '불필요한 제약'으로 인식되는 회계 원칙


회계법인과 협업해본 스타트업이라면 공감할 내용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발비의 처리 문제입니다.


"우리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 중인데, 왜 이것을 모두 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나요?"
"이대로라면 재무제표상 손익이 너무 악화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회계 기준이 창업 생태계를 죽이는군요."


회계에서는 자산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개발 활동이 비용으로 처리됩니다. 이는 스타트업이 가진 미래 가치와 혁신 잠재력을 현재 시점의 재무제표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으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갈등 지점은 수익 인식과 비용 처리의 타이밍입니다. 투자자와 채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은 당연히 손익에 민감합니다. 여기서 회계 수치 조정이 사업 문제 해결의 지름길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실제 사업 성과를 개선하는 것보다 회계 처리를 조정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니까요.


2. 외부 의존의 함정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은 회계 업무를 외부 기장업체에 맡깁니다. 세금 신고는 필수이니 최소한의 회계 업무는 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서는 회사의 실제 재무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분석하기 어렵습니다.


회사는 거래 증빙을 외부 기장업체에 전달하고, 회계 처리 결과는 대개 다음 해 세금 신고 시점에 받게 됩니다. 이렇게 처리된 내용을 얼마나 꼼꼼히 검토할 수 있을까요?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솔직히 인정하듯,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전문가에게 맡겼으니 신뢰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스타트업 회계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들


회계의 중요성이 갑자기 부각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목격한 대표적인 네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1. 첫 회계감사의 충격

외부감사를 처음 받게 된 스타트업은 종종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동안 관행처럼 해오던 회계 처리가 감사인의 시각에서는 수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지적됩니다. 특히 과거 여러 해에 걸친 잘못된 회계 처리가 한꺼번에 수정되면서 당기 손익이 예상보다 훨씬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IPO 준비 과정의 난관

상장을 준비하면서 받게 되는 지정감사는 일반 감사보다 더욱 엄격합니다. 재고자산 평가, 수익 인식, 특수관계자 거래 등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해 상장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3. 법적 조사의 부담

경영 환경이 악화되거나 내부 고발 등으로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면, CEO는 자신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회계 처리가 법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모든 회계 처리의 최종 책임이 대표에게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4. M&A에서의 가치 증명

회사 매각을 추진할 때, 매수 측은 철저한 재무실사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회계 데이터의 신뢰성이 핵심 쟁점이 됩니다. 많은 창업자들이 "우리 회사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확신하지만, 이를 객관적인 회계 데이터로 증명하지 못해 적정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회계, 기록을 넘어선 경영의 나침반


IT 개발자들과 대화할 때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일관된 방식으로 축적된 데이터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회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계는 단순한 '세금 신고 도구'가 아닌, 기업 활동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는 종합적인 데이터 체계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스타트업이 체계적인 회계 시스템 없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우리는 ERP가 없어서", "회계 인력이 부족해서", "지금은 사업 성장이 더 중요해서" 등의 이유로 회계 데이터는 방치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팀별로 따로 관리하는 비공식적인 수치나 개인적 판단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렇게 분산된 데이터는 당연히 회사의 공식 회계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경영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


회계원리 교재의 첫 페이지에는 보통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회계는 경영의 언어이다." 언어를 배우지 않고 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어렵듯이, 회계라는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비즈니스 세계에서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선택은 창업자의 몫입니다. 문제가 발생한 후 고액의 컨설팅 비용을 들여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튼튼한 회계 기반을 구축할 것인지. 개인이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듯이, 기업도 일시적으로 회계 수치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행동들이 모여 기업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결정짓게 됩니다.


스타트업의 성장 여정에서 회계는 필수적인 동반자이자 나침반입니다. 단기적인 편의를 위해 이 나침반을 포기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진정한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회계의 언어를 배우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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