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하기 위해 부자는 1,500km가 필요했다
여기 자신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믿는 한 노인이 있다. 당첨 금액은 100만 달러 (한화 약 14억 원).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그건 단순히 광고전단지일 뿐이라고 설득하는 한 아들이 있다.
치매가 걸린 아버지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당첨금을 받기 위해 ‘네브라스카주의 링컨’에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중얼거릴 뿐. 아무리 그건 가짜예요라고 온 가족이 말려보지만, 치매끼가 있는 노인은 혼자 걸어서라도 가기 위해 계속해서 집을 나간다. 링컨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약 1,500km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번은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가족들은 이런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점점 지쳐가고,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보내버리겠다며 화를 낸다. 착하고 슬퍼 보이며 가족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데 익숙한 막내아들 데이비드는, 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링컨으로 데려가겠다고 결심한다. ”가서 뭐 하게? 복권은 거짓말인 거 알잖아 데이비드“ 엄마와 큰 아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냥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해주자 싶었던 듯하다.
그래 참 착한 아들이네. 여자친구를 사랑하지만 누군가와 가족을 만드는 것은 무서워 떠나보내고, 자신이 하는 스피커 판매원 일도 순탄치 않으면서, 가족들의 감정은 웃으며 다 받아주는 착한 아들. 왜 친절하고 다정한 그는, 그렇게도 슬퍼 보이는 걸까?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링컨까지 가는 길에는 운명처럼 아버지의 고향인 ‘호손’이 있다. 노인은 “그곳에 들리기 싫어”라고 말하지만, 가족행사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며칠 머무른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형제와 친구와 부모님과 죽어버린 동생과 전 여자친구까지,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든 삶들을 마주한다. “그랜트가 남자들은 다 말 수가 적죠.” 숙모의 말처럼 영화는 오랜만에 모인 형제들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무표정으로 같이 풋볼경기를 보는 것뿐이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랜트가 남자들이 만든 가족들은 하나같이 뒤틀려 있으며 행복하지 않다. 대화를 하지 않는 삶은 얼마나 위험한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조차 알아챌 수 없으니 말이다.
데이비드가 여자친구를 사랑하면서도 가족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 또한 이것이다. 가족은 행복하지 않다.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면 헤어지겠다는 여자친구에게, “우리 그냥 이렇게 같이 살기만 하면 안 될까?”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결혼하면 불행해지고 말 테니까.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삶이란 어쩜 이렇게 잔인한가.
드디어 링컨에 도착한다. 그리고 당연히 복권은 가짜였다. 복권만이 삶의 남은 희망인 듯이 구는 아버지를 향해, 데이비드는 드디어 진짜 대화를 건넨다. “백만 달러가 왜 필요하신 거예요, 갖고 싶다는 트럭 하나 사는데 백만 달러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 그리고 아버지는 그제서야 진짜 대답을 한다. “너희한테 뭔가 남겨 주고 싶었어”. 이 순간이다. 평생 동안 대화를 해보지 못한 부자는, 1,500km를 달려와서야 이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오래도 걸렸다. 그랜트 가의 남자들은 말수가 참 적다.
대화가 사라진 삶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다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에게는 가짜당첨된 복권 한 장과, 1,500km의 거리가 필요할 것이다. 혹은 그에 상응하는 어려움과 용기가 필요하겠지.
네브라스카 Nerbraska
알렉산더 페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