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부서질지언정

by 시루

고기를 잡지 못한다며 마을사람들에게 무시받는 한 노인이 있다. 모두가 노인의 말은 다 허무맹랑한 헛소리일 뿐이라며 들어주지 않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놀린’이라는 소년에게, 얼마나 큰 물고기를 잡았는지, 야구는 어떤 선수가 최고라느니, 읽는 독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과거에 사는 허풍쟁이구나 ‘싶은 이야기들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던지 관심이 관심이 없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젊은 시절 팔씨름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 깜둥이와의 팔씨름이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것 같다며 다들 흥미를 잃고 떠나려 한다. 그러나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그 순간 결국 승리하며, 반면에 상대방은 그 패배의 경험 이후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



그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늙어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홀로 바다로 향한다. 그러다 어떤 기운에 이끌린 것인지 먼 곳까지 나가게 되고, 자신의 운명의 상대인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다. 노인은 젊은 시절의 팔씨름 경기로 돌아간 듯 몇 시간이고 포기하지 않은 채 싸움을 지속한다. 그리고 결국 운명을 굴복시키고 만다. 역시 자신이 맞았다! 그때처럼 지금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기어코 승리로 증명해 낸 것이다. 이제는 그 ’전리품‘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청새치에서 나오는 피가 오히려 바다의 포식자인 상어들을 끌어들여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순간 인간에게 최선의 선택은 명확하다, 청새치가 아무리 귀중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값보다는 못하다. 전리품 따위는 당장 상어들에게 줘 버리고 마을로 돌아와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세 마리의 상어와의 싸움을 선택했으며,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남은 거라고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뚱아리와, 뼈밖에 남지 않은 청새치였다. 대체 왜?



그는 어째서 물고기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인생의 목적이 ‘거대한 물고기를 비싸게 팔 수 있다’였다면 그는 상어가 절반의 살코기를 앗아갔을 때 당장 그것을 줘버렸을 것이다. 남은 살코기의 양은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에게 청새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스스로가 맞았다는 승리의 증표였으니까. 살코기를 얼마에 팔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지키고 싶었던 건 그 신념이었다. 그렇게 뼈만 남은 청새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오히려 뼈만 남은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살코기는 덤일 뿐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방송인 노홍철이, 어떻게 하는 일마다 성공하느냐의 질문에 ”간단하지, 될 때까지 했으니까 “라는 답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신념이 있는 인간은 포기를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자신의 자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의 삶처럼 그 길은 너무 고독하고 외롭기에,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노인이 가장 많이 했던 말처럼.



“마놀린, 네가 지금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걸”.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2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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