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때부터 계속 있었던 부서에서의 마지막 날. 한 달 전부터 수 없이 인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숙취를 느끼며 커피를 마시다 보니 마지막 날이 되었다. 별로 슬프거나 아쉬운 기분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 쪽이었다. 어 그냥 다음에 또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며칠 전의 마지막 회식에서의 마지막 한마디도 이런 식이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이별 같지 않아서요. 그냥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날은 다들 점심 먹고 퇴근하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혼자 자리를 지키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도 이제 가야 했다. 떠나기 전에 실험실 한번 둘러보고 갈 거라던 선배의 말이 생각나, 짐을 챙겨 정문으로 나가기 전 실험실로 잠시 올라갔다. 하얀 가운과 투박한 안전화를 신고 들어가던 곳을, 하얀 코트와 검은 플랫구두를 신고 들어간다. 그때였다. 이별 같은 어떤 것이 이제는 코앞까지 찾아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될 때가.
빈 실험실에는 설비를 전부 보내고 남겨진 테이블과 흩어진 쓰레기들만이 흩어져 있었고, 그 중앙에 가장 이질적인 모습의 흰 코트를 입은 여자가 있었다. 이곳이 이렇게 넓었던가? 내가 가장 오래 앉아있었던 테이블을 쳐다봤다. 10년이었다, 내 인생의 자그마치 10년이 이 실험실과 함께 자라왔다. 이제 아이는 커서 떠난다.
장소는 시간을 머금는다.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시간 또한 두고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못내 아쉬워졌다. 건물을 나서며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신입사원 때 매일 울며 내려갔던 야외계단이 보였다. ‘너도 안녕이다. 잘 있어라’ 인사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이별은 늘 늦게 도착했던 것 같다. 지연된 슬픔. 모두가 떠나고 나는 늘 나중에 울었다. 선배에게 썼던 마지막 문장도 이런 식이었다. 이별이 올 줄 알지만 왜 순간이 영원한 것처럼 살게 되냐고. 하지만 이별이라고. 그것이 아쉬우면서도 즐겁다고.
아. 다음 역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전 역은 이미 지나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