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단 한 번도 아이가 되어본 적 없는 사람

나는 인어였어야 합니다

by 시루

A는 단 한 번도 아이였던 적이 없다. 자신이 기억하는 선 안에서 A는 늘 한 명의 독립된 인간이었다. 부모는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잘 곳을 내어주었으나, 단 한 번도 아이로써의 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혹은 A가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먼저 조숙한 사람마냥 연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딱딱하게 굳은 컨크리트나 철이 아니라 연약하고 물컹한 유기물인지라, 주어진 틀에 맞춰 모양이 바뀌게 된다. 우리는 그런 척하다 보면 내가 진짜로 그런 건지 연기를 하는 건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A는 어른이 되었다. 단 한 번도 아이가 되어본 적 없는 채로.



삶은 살려고 하면 살아진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도, 죽음이 두렵다면 삶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A는 평범하게 살았다. 좋은 대학과 많은 친구들, 시끄러운 약속들에 파묻혀있으면 살만했다.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원래 다들 이렇게 사나 보다 하며 시간이 흘렀다. A는 매력적이었기에 연인이 있을 때도 있었으나, 그들이 무겁게 느껴지게 되면 어김없이 헤어졌다. 아니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A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게 기대려고 하는 거지? 자신의 감정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게 어른이니까.



그러다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이전과 똑같이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게 기대고 싶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당황한다. 연인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는 것만큼 별거 아닌 것처럼 너무 쉽게 기대게 만들어버렸다. A는 언제 미끄럼틀 위에 올라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려오고 나니 이전까지의 삶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깊은 감정을 겪으면, 피상적인 감정은 더 이상 감동을 줄 수 없다. 자신이 인어임을 깨달아버린다. 이제는 깊은 물속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가? A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 어렵다. 이전과는 다르게 최선을 다해 애써보았으나 연인은 만족하지 못한다. 잠깐 내어준 어깨는 쓸모가 없이 버려지기를 여러 번. A는 얕은 물에서 살 때가 더 편했다고 느낀다. 그때는 자신의 쓸모없음과 이렇게 마주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매트릭스에서 파란 약을 선택한 후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어 하던 선원처럼, 그는 또다시 연인을 두고 얕은 곳으로 헤엄친다. A는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모를 일이다. 아니 애초에 A는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니 이 질문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때는 올 것이다. A는 깊은 물을 찾게 될 것이다. 비로소 아이임을 허락받으면서.



“나는 인어였어야 합니다. 깊은 곳은 두렵지 않지만, 얕은 삶은 두려우니까요”
I must be mermaid. I have no fear of depths and a great fear of shallow living.

- Sylvia Plath


@youguimi


# 본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