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by 이수영

세상 모든 우연이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 범우주적 자연의 질서가 모두 지금을 위해 역사하셨구나. 태초의 빅뱅, 지구의 형성, 생명체의 진화, 문명의 발전, 한강의 기적, 나의 탄생, 이 전부. 내가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가 딱 그랬다.

그렇다고 첫눈에 반했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운명의 순간임을 느꼈다곤 하나, 당장 그쪽으로 넘어가기엔 그 친구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너무 달랐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새로운 자극에 가장 취약한 법. ‘재밌다’가 ‘좋아한다’로 바뀌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난 그 친구와 깊은 사랑에 빠져 있었고, 우리는 한순간도 서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낮이나 밤이나, 안에서나 밖에서나, 침대에서도. 그림을 꼭 끌어안고 최후를 맞던 「올 더 머니」 속 크리스토퍼 플러머처럼, 난 그 친구를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널 품에서 놓지 않을게, 라고 해도 눈을 뜨면 그 친구가 바닥에 굴러다니기 일쑤였다. 농구공은 탄성이 좋으니까.

내가 농구와 사랑에 빠지게 된 데는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의 지분이 49퍼센트다. 중학교 농구 선수 출신에 담당 과목이 체육. 시간 나면 농구하자며 애들을 꼬시고, 마이클 조던의 위대함에 관해 설파하는데, 누가 그런 환경에서 농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슬램덩크와 담임쌤, 둘 중 누가 먼저였냐 하면, 거의 막상막하였다. 1,000분의 1초 차이로 1, 2등이 바뀌는 단거리 육상 시합처럼.

열다섯 살의 오타쿠는 이 만화, 저 만화를 뒤적이다가 아주 유명하다는 그걸 보게 된다. 지금이야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10, 20대도 슬램덩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지만,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또래 중에 슬램덩크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고, 만화 전체를 다 본 사람은 제로에 수렴했다. 난 흐르는 수렴치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힘찬 연어였다. 그렇게 내 농구 사랑의 지분 51퍼센트는 슬램덩크가 차지했다. 축하합니다, 대주주님.

애틋한 사랑엔 꼭 따라오는 것이 있었으니, 둘 사이를 훼방 놓는 장애물. 내 경우에 그건, 내 몸이었다. 운동을 못 했다. 진짜 드럽게 못 했다. 당연했다. 엄청 싫어했으니까. 질문 꾹.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답 띠링! 체육. 자판기 음료수 뽑듯, 누르면 나왔다. 달리기는 만년 꼴찌. 뜀틀은 항상 뜀이 되지 않아 틀만 남았다. 줄넘기는 줄걸리기로 개명을 하는 게 나을 정도.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하루라도 본다지만 나와 체육은, 그쪽에서 만나자고 해도 내가 한사코 거절했다. 우린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 이루어지고 싶지도 않고.

농구만 달랐다. 농구는 내 오감을 다 자극하며 날 유혹했다. 주황색의 매끄러운 몸체. 공이 그물을 통과하고 내려올 때의 촥 소리. 코트에 튕긴 공이 다시 내 손에 붙을 때의 오돌토돌함. 먼지가 뒤섞여 조금 텁텁한 가죽 냄새. 어느새 줄줄 흘러내렸던 땀의 짭짤함. 농구는 말했다. 이래도 네가 날 안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플러팅의 귀재.

알면 사랑한다는데, 세상엔 모르고 시작하는 사랑도 많다. 사랑하니까 알아가기도 하고. 농구 잘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한국 프로농구를 보고, 미국 프로농구도 보고, 매일 나가서 드리블하고, 혼자 몇 시간이고 슛 연습을 했다.

부정극어로 쓴 ‘절대’마저 손쉽게 뒤집어 버리는 것이 사랑의 힘이지.

누군가 그의 발에 페인트를 묻혔다면, 그라운드 모든 곳에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박지성을 두고 한 말이었지만, 내가 농구할 때마다 그랬다면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장담한다. 덕분에 참 건전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중학교 내내 혼자 농구하고, 고등학교 농구부에 들어가선 점심도 안 먹고 농구하고, 방과 후에 해 떨어질 때까지 농구하고, 주말엔 학교 뒤 공원에 불이 꺼질 때까지 농구했다. 방황하고 엇나갈 시간 있으면 슛 한 번 더 쏘고, 드리블 한 번 더 해야 했다.

하루는 의문이 들었다. 흑인처럼 머릴 밀면 농구를 좀 더 잘하게 될까? 생각은 짧았고, 실행은 빨랐다. 삼만 원짜리 바리깡은 절삭력이 훌륭했다. 대략 5년 치 이발료를 아꼈다. 본전은 톡톡히 뽑았다. 당연히 그런다고 농구 실력이 늘진 않았지만, 대신 학교 내 관심은 확실히 늘었다. 나쁘지 않았다. 전 세계 모든 10대에겐 아닌 척 해도 관심을 갈구하는 또 다른 내가 늘 함께하니까.

매일 농구하는 키 작은 빡빡머리가 조용히 소극적으로 살긴 힘들다. 성격을 바꾸고 싶은 사람에겐 마음가짐의 변화보다 몸과 외형의 변화가 더 알맞은 처방전이다. 그 편이 약효도 훨씬 빠르고 잘 듣는다. 어쩌면 덩달아 인생도 바뀔지 모른다.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물론, 임상 결과가 나 하나 뿐인 돌팔이 의사 입장이니까, 알아서 걸러 들으시라. 확실한 건, 그때 농구를 만나지 못한 멀티버스의 이수영은 지금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지.

지금은 농구와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어느 유명한 영화 평론가의 말을 대답 대신 하자면,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직감은 90퍼센트 적중한다고 한다. 이별의 순간으로 범위를 축소한다면 99.9퍼센트에 육박하지 않을까. 시간이 흘렀고, 여기까지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연스레 손에서 농구공을 놓았다. 아쉬움은 없다. 미련 없이 사랑했으니까. 확신은 있다. 언제든 다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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