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큰 아이의 대학 입시가 코앞에 와 있었다. 큰 딸은 수시에 모두 떨어졌기 때문에 정시에 응시해야 했다. 수능 성적에 맞춰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기로 한 날, 딸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인 서울 못해서 친척들한테 자랑도 못하고 좀 그렇지?"
평소의 나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알긴 아네, 고모네 자식들은 서울 유명 사립대에 철썩 잘만 붙더라"
그러나 시험에 떨어진 나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딸에게 그런 말을 내뱉어서 상처를 줄 수 없었다.
"그런 거 없는데. 신경도 많이 못써줬는데 이 정도 해 준 것만으로도 엄마는 완전 고맙지.'
엄마의 우아한 답변에 딸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는 "역시 우리 엄만 쿨 해" 라며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내가 쿨해서가 아니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 최고이기를 바라며 아이를 힘들게 했던 적도 있다. 단지 내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아이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의 시간 동안 나의 실패의 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해왔다. 내가 아이의 첫 도전에 찬물을 끼얹을 형편이 아니었다.
아이와의 대화가 끝나고 누웠다가, 문득 시골에 혼자 계신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돈이 없어 우리 애들 뒷바라지를 못해줘서 그렇지.'
우리 엄마의 단골 멘트이다. 없는 형편에 대학까지 보낸 막내딸이 시험에 족족 떨어져서 비정규직으로 뺑뺑 돌고 있어도 엄마는 가난했던 당신 탓을 할 뿐이다. 친척들 모임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촌들 자랑을 분명 들었어도 입 밖으로 그들과 비교하며 나를 들볶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일 엄마까지 나에게 '그래도 어렸을 땐 니가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는데 지금 이 꼴이 뭐냐'라고 다그쳤다면 나는 마음 둘 곳을 잃고 더 깊은 자괴감의 늪으로 침전했을 것이다.
엄마의 단골 멘트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왜 그게 엄마 탓이야. 대학까지 보냈음 됐지."
라고 짜증을 내다보니 부모 탓하는 못난 짓은 일찌감치 안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멘트가 혹시 자식에게 자립심을 길러주려는 우리 엄마의 빅 픽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책 < 꼰대의 발 견 : 꼰대 탈출 프로젝트>에서 작가 아거는
'꼰대질은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자기가 무엇 하나라도 우위에 있다고 여길 때 발현된다.' 고 했다. 대기업을 정년퇴직한 아버지는 중소기업에서 빌빌 거리는 아들이 아마도 못마땅할 테고 , 자신의 요리 솜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음식을 타박할 가능성이 크다. 꼰대가 되어 남이 원하지도 않는 조언과 강요를 쏟아내지 않으려면, 그냥 겸손하면 된다. 엄마는 학교 문턱도 못 넘어 보았기 때문에 꼰대에 대한 책을 본 적도 없고 아마도 꼰대라는 말조차도 모르실 테지만, 다만 자식 앞에 겸손하기 때문에 꼰대가 아닐 수 있었다.
나도 일곱 번 실패를 겪으면서 자식에게 잘난 훈수를 둘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럭저럭 아이에게 꼰대 엄마 짓은 안 하게 되었다. 실패를 통한 강제적 겸손이라고나 할까. 아하하.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조금 헷갈린다.
아무튼 교사 엄마가 되어 화려하게 부활하려는 나의 욕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이에게 이렇게 노력하면 결국 이룰 수 있다고 엄마처럼 하면 된다고 몸소 인생의 로드맵을 보여주려던 계획은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나를 존경하지는 않아도 좋아해 줄지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리 엄마를 좋아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