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롸잇 나우 리스트를 쓰고 있다
갑자기 대청소를 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언니 때문이다. 언니의 새집 집들이에 다녀온 후 돌아와 보니 늘 보던 우리 집이 새삼 누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거실에 막 들어서니 소파 옆구리는 고양이가 물어뜯어 앙상한 골조가 드러나 있고 소파에서 빠져나온 누런 솜뭉치가 바닥에 뒹굴고 있다. 오래된 32인치 TV는 언니 집의 56인치를 보고 온 내 눈에는 스케일이 너무 작았다.. 부엌을 둘러보니 그전에 살던 분이 이사 가면서 두고 간 식탁이 눈에 들어온다. 나름 유명 브랜드 가구를 득템 했다고 좋아했었는데 언니네의 400만 원짜리 북미산 원목 6인용 식탁에 비교하니 갑자기 폐기물 쓰레기를 주워온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든다. 안방은 또 어떤가. 장롱문을 열자 보풀이 일어난 극세사 이불과 누렇게 색이 바랜 요솜이 어색하게 웃으며 주인을 맞아준다.
이상하다. 그동안 익숙했던 우리 집이 낯설다. 매일 덮고 잤던 이불의 묵은 때가, 어지럽게 꽂혀 있는 책들이, 손잡이가 빠진 장롱이, 식탁 의자 틈새에 쌓여있는 먼지들이, 신발장에 처박아 놓은 고장 난 프린터가 왜 그동안 자기를 잊고 있었냐고 한꺼번에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공부를 하는 동안 일상의 작은 행복까지 누리는 것은 사치였으므로 기본적인 청소 빨래 요리를 제외하고는 집안에 변화와 활력을 주는 일은 추가할 수가 없었다. 수험생의 시간만큼 집안은 조금씩 낡고 지쳐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굵은 주름살이 훅 눈에 들어올 때처럼 갑작스러운 당황스러움과 슬픔이 갑자기 밀려왔다. 언니처럼 고급 수입가구를 못 사는 내 처지도 물론 슬프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일상의 깨알 같은 행복을 그동안 미루고 외면해왔다 것을 알게 된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불효자 코스프레하며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고 지금 바로 지금 그냥 잘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청소는 역시나 힘들었다. 미니멀리즘을 부르짖던 나는 혹시 호더스가 아니었을까. 그동안 대형마트를 갈 시간도 없었는데 방마다 나온 쓰레기는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채우고도 넘쳤다. 고장 난 가구와 낡은 이불을 버렸다. 작년까지 보았던 수험서는 과감히 종이 쓰레기로 재활용했다. 청소를 끝내고 집안을 둘러보니 어째 좀 휑하다.
6인용 식탁을 사서 부엌을 채우기로 했다. 언니처럼 고급 가구를 살 형편이 안되니 인터넷의 도움을 빌렸다. 태국산 고무나무로 만든 식탁이 도착했다. 자세히 보면 허접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럴싸하다. 요즘 들어 요리에 취미를 붙인 남편을 위해 색이 고운 접시도 몇 개 준비하고 즐거운 요리 시간을 위해 커다란 TV도 장만했다. 부려먹으려는 나의 의중을 파악 못한 남편이 물색없이 좋아해서 조금 미안했지만, 어쨌든 인터넷 프리미엄 후기에 나오는 사진만큼의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새로 산 식탁에서 앉아 앞으로 더 필요한 물품을 적어보았다. 남편은 자신의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중국식 칼과 도마를 사서 고급 중식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서울대 갈 것도 아니고 큰 TV가 들어온 만큼 많은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케이블 설치를 강력히 원한다고 한다. 나는 고급진 부부 찻잔을 사서 새로 산 식탁 위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셔보고 싶다고 썼다.
시험에 합격하여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은 나의 중요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버킷 리스트의 일 순위 항목 달성에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버킷 리스트 대신에 롸잇 나우 리스트(Right- now list)를 쓰려고 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이제 곧 나는 새로 산 태국산 고무나무 식탁에 앉아 새 중국식 칼로 남편이 요리한 깐풍기를 맛볼 것이다. 이왕 중국 요리를 하는 김에 중화요리 주방장 외투도 입고 불쇼 이벤트까지 보여주겠다고 남편은 알찬 포부를 다지고 있다. 아이들과 케이블 TV로 영화를 보며 아이돌 연기자의 연기에 대해 품평회를 열고 새 부부 찻잔에 믹스 커피를 타서 주말 아침마다 남편과 함께 마실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