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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Jun 09. 2020

그렇게 어른이 된다

                                            

심연을 빠져나오자 기억이 선명해졌다

              


얼마 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호흡이 힘들어졌다. 깊은 바닷물 속에 혼자 잠겨 있는 기분, 아니면 작은 상자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울감과 과호흡이 함께 찾아왔다. 공황장애가 재발한 것이다.           

몸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나의 몸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요즘 무엇을 신경 쓰고 있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늘 스트레스 관리를 해오고 있었다. 7년 동안 잠잠했던 공황장애가 왜 다시 찾아왔을까. 응급실에 실려가기 전에 빨리 원인을 찾아야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원인은 엉뚱한 데 있었다. 그것은 바로 큰 아이 었다. 그리고 곰곰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니 요즘 내가 아이에게 크게 실망한 일이 떠올랐다.           

큰 아이는 올해 대학생이 되어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었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기도 하고, 가끔은 외박도 했다. 딸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그 시기는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자신을 피해 간다고 호기를 부릴 만한 나이다. 인신매매, 택시 성폭행...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를 늘어놓는 나의 말을 딸은 가볍게 웃어넘긴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엄하고 보수적인 우리 아버지 밑에서 나도 얼마나 힘들었었나. 그래서 내가 크면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자 다짐했었지. 딸은 성인이니까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도록 내가 조금 참아주자.'     

딸이 대학을 입학하고 몇 개월간은 나의 이성은 제대로 작동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가 무단 외박을 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무단 외박은 아닐 수도 있다. 그날 아이는 집을 나서기 전에 '오늘 나 안 들어와'라는 통보를 날렸다. 미리 허락이나 양해는 구하지 않았다. 잘 있다는 안부 문자를 기대하며 밤새 기다렸지만, 역시 문자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까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아이에게 먼저 문자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참았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달라야 했으니까. 나는 아버지처럼  딸을 속박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느꼈던 억압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의 위선이었다. 나의 속마음은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외박 금지령을 내리고, 통금 시간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싶었다. 나의 본능을 억누른 죄로 마음이 병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병의 원인을 찾게 된 날, 나의 기억의 얇은 불투명한 필름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예민한 영혼의 아이가 있다. 그리고 딸의 늦은 귀가에  활화산 같이 화를 쏟아내고 외박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완고한 아버지가 있다. 나는 아버지의 통제가 숨 막혔고 아버지와 부딪힐 때마다 아버지처럼 자식을 다루지 않겠다고 울면서 다짐했다. 그러나 얇은 막을 한 꺼풀 벗기자 그동안 외면하고 싶던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시하고 대학교 1학년 때  자취생활을 시작한 아이다. 매일 자취방에서  선배들과 술을 마시다 소음을 견디다 못한 집주인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이삿집 트럭에 실려 집에 끌려 들어간 아이다. 한동안 집에서 통학을 하다가 상황이 잠잠해지자 또다시 독립을 시도한 아이다. 알바로 돈을 벌어 10만 원짜리 방세를 내고 20만 원으로 생활비를 하며 1년을 버티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던 아이다.  

   

내 멋대로 결정하고 아버지의 고집을 이겨먹고 부모의 마음은 아웃 어브 안중이었던 그런 아이. 그것이 바로 또 다른 나였다. 그리고 그동안 기억 속 어두운 뒷배경에 가려져 있던 아버지가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연락이 되지 않는 딸 때문에 얼마나 긴 밤을 새웠을까. 새벽에 나가 혼자 쓰디쓴 한라산 담배를 몇 대를 태웠을까. 마음대로 안 되는 자식을 어쩌지 못해 잠도 못 자고 새벽에 무거운 몸으로 출근한 날은 몇 날이었을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동안 내 기억은 오직 내가 주인공이고 피해자였으므로. 아이의 한 번의 무단외박에 무너지는 나는 아버지에 비하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리고 딸에 비해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된 자식이었나. 나는 마흔일곱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어린 날의  내가 얼마나 미성숙하고 부족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스무 살의 나의 아이를 통해서 말이다.     


과거의 철없던 나를 인정하면서 나는 아이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고 마음의 깊은 늪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면서 이제야 조금씩 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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