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체리 Aug 02. 2020

우리 병원에 신문물이 들어왔다


우리 병원에 새로운 기계가 하나 들어왔다. 그 기계의 이름은 '비접촉식  발열 체크기'이다. 카메라처럼 생긴 화면에 얼굴을 들이대면 이 기계는 먼저 안면인식을 한다. 그러고 나서 체온을 측정한 후 체온 범위가 정상이면 '정상 체온입니다'라고 알려다. 화면으로 '36.5도'라고 정확한 체온 수치도 표시해주고 마스크를 미착용했을 경우 '마스크를 쓰십시오!'라는 경고 메시지까지 말해준다.



우리 병원은 코로나 발생 이후 환자들을 대상으로 발열체크를 해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막 체온계를 썼었는데, 정확도는 높지만, 위생문제가 걸렸다. 환자들은 고막 체온계를 귀에 넣을 때마다  "그거 소독한 거여?"라고 물어보곤 했다. 나중에는 직접 눈 앞에서 알코올 솜으로 닦으면서 체온을 재 드렸지만, 아무래도 불안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음으로 준비한 것은 이마 체온계이다. 이마에서 3~5cm 떨어져서 측정하기 때문에 이것도 비접촉식 체온계이다. 얼굴에 밀착시키지 않기 때문에 소독도 필요 없다. 그런데 고막 체온계에 익숙해진 환자들은 우리를 향해 귀를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문제가 있었다.  "... 이거 이마 체온계예요. 이마로 재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체온을 측정하고 나면 "몇 도여? '"정상이여?'라는 질문들이 돌아왔다.




체온 측정이 그리 힘들거나 번거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체 병원 업무 중 또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다. 체온 측정을 자동화하고 환자들에게 더 중요하고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원장이 마침 이 기계를 거금을 주고 들여놓은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환자 수가 급감을 하자 매일 죽상을 하고 있던 우리 원장님은, 요즘 제법 환자 수가 자 이 기회에 그들에게 무언가 임팩트를 주는 투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절대 직원들의 업무를 줄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강력한 코로나 관련 방역 대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이 기계가 딱이었다.





그런데 그 기계를 들여놓자마자 우리 병원이 난리가 났다. 우리 병원은 주로 노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동네 내과의원이다. 어르신들에게 이 기계는 그야말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이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정면에 떡하니 마주하게 되는 이 기계 얼굴을 아주 가까이 들이대는 분이 90%이다. 나머지 10%는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가 멀찍이 떨어뜨렸다가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얼굴을 정확히 대주세요'라는 멘트가 연속으로 나 시끄러워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그래서 환자들의 거리 조절을 돕기 위해 적당한 위치에 발바닥 그림을 그려서 붙여놓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체온계가 카메라인 줄 알고 어색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 발판 위에 계속 서계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어찌어찌해서 체온 측정이 끝나고 나면,  그 이후에는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이거 찍을 때 신발 벗어야 되는 거 아녀?"


"정상이라는데 그럼 내가 몇 도인 거여"


'이거 새로 산 거야? 세상 좋아졌네, 얼마래? "


"원장님이 사셨어? 언제 이걸 샀대?"



그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동안, 방금 병원 내로 진입한 또 다른 어르신이 기계에 얼굴을 계속 들이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기계에서 '얼굴을 정확히 대주세요'라는 멘트가 쉴 새 없이 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환자분, 발판 그림 위에 올라와 주세요"를 외치고 "발판이 어딨대?"라고 묻는 환자분에게  뛰어가 발판 위치까지 알려드리고 돌아온다. 그러다 보면 체온을 재려는 분들과 접수를 하려는 분들이 엉켜 어느새 좁아터진 진료 대기실이 북새통이 되어 있다.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우리는 어르신들에게 그 전보다 더 시달리는 느낌이었다. '비접촉 기계'를 사놓고 계속 체온을 확인해 주거나 자세를 잡아 주고 기계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 드리는 등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장님은 거금을 투자했지만, 안타깝게도 주 고객층의 연령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우선, 이 처음 보는 시커먼 기계는 어르신들을 이유 없이 긴장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기계 앞에 서면 당황하게 되고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게 되고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직원들에게 질문하거나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직원과 고객 간의 거리가 좁혀지게 되고 결국 이 첨단 과학 기술을 담은 '비접촉식 기계'는 단돈 이만 원짜리 '접촉식 기계'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던 오늘,  원장님이 화장실을 가다 말고 우리에게 의뭉스럽게 물었다. "어떠냐?'  그 기계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을 묻는 것이다. 그러자 젊은 동료 하나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음... 나쁘진 않아요.' 

대박! 원장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씰룩거렸다. '오홍홍 기대 이상이에요. 원장님. 사길 잘했어요.'를 기대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시크한 "not bad"라니. 자본금 삼백만 원을 투자한 짠돌이 원장님은 "그래?"라고 억지로 괜찮은 듯한 표정을 꾸며서 대답했지만 아마도 삐친 것 같았다.







그렇다. 그 직원의 말대로 그 기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하나의 신문물이 들어올 때 눈부신 이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늘과 소외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에게 그 기계는  '불필요한 질문'과 '과도한 요구'에 응대하지 않는 자유를 의미했지만, 노인들에게 그 기계는 '당신과 말하기 싫다'는 단절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 갑자기 자유를 선택해버린다면 그들은 한동안 그 어색한 기계를 마주하며 고독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기계 하나로 병원 잡일에서 벗어나려던 나의 수작은 너무 얄팍했다. 기계 하나로 갑자기 큰 홍보 효과를 기대했던 원장님의 속셈만큼이나 말이다. 아무튼 원장님이 삐졌으니 내일은 조회시간에 늦지나 말아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