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원에서 일한 지 일 년 반이 되었네요. 아침이면 출근이 두렵고 밤이 되면 퇴사를 꿈꾸던, 지옥 같던 신입시절을 어찌어찌 잘 넘겼습니다. 지금은 일도 제법 손에 익고 병원 굴러가는 시스템도 빠삭하게 파악했습니다. 한마디로 짬밥이 생긴 거죠.
그래도 아직 저는 병원 일이 힘듭니다.
이곳은 종합병원의 중환자실이나 응급실과 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함과 긴장감은 없습니다.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공황 상태가 되어버리는, 예민하고 긴장도가 높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대신 이곳은 '사람'이 힘듭니다. 엄청난 인내와 감정 컨트롤이 필요한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서비스 직종에서 일해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죠. '시민의식'이나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되는 곳, 감당하기 힘든 과잉 친절을 강요받고, 흘려 넘길 만한 사소한 실수가 큰 상처가 되어 되돌아오는 곳, 그곳이 바로 동네 병원입니다.
병원 이야기를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동네 병원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매거진의 구성은 아마도 '환자들에게 갈굼 당한 이야기'와 '늙은 신입의 좌충우돌 직장 적응기'가 될 같습니다.
원래는 다른 주제로 매거진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제게는 너무 어려운 주제였나 봐요. 글 한 개 발행해놓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 동네 병원 이야기'로 바꿨더니, 갑자기 쓸 말이 마구 생깁니다. 역시 자신이 가장 절실함을 느꼈던 순간과 공간을 떠나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느낍니다. 만일 어려운 주제를 계속 끌고 나가려고 했다면 그럴 둣한 이야기로 꾸밀 수는 있었겠지만, 진심이 담긴 글이 나오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정신 승리해보려고요.
저의 첫 브런치북 <시험 중독 탈출기>의 어느 글에 한 독자분이 달아 주신 댓글입니다.
' 당신은 이제 중독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정신 수양의 길로 가고 있다.'
그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실패 경험을 2년간 써오면서 제가 느낀 것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독에서 정신 수양으로 바로 점프한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을 더 세분화해보면 '중독- 정신승리-정신수양'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저는 요즘 말로 '정신 승리'부터 했습니다. 인생의 시합에서 졌지만, 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패배감에 빠져 저 스스로를 공격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정신 승리를 하면서 내가 이 실패와 좌절을 통해 얻은 것을 하나하나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얻은 것도 있더군요.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세상의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된 것, 인생에 대해 겸손하게 된 것..... 그것을 찾아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신이 수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해보니 이제는 어떤 또다른 좌절이 닥쳐와도 '정신 승리 - 정신 수양'의 변환 단축키만 누르면, 그 실패가 결국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힘들어 죽겠느니 당장 때려치우느니 해도 이 곳, 동네 병원에서도 정신 승리를 하면서 잘 버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과정을 글로 쓰면서 정신 수양도 같이 해봐야겠죠. 그런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조금 걱정이 되네요. 매번 글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우울하고 심각한 이야기만 쓰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
그래서 최대한 무겁지 않게,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동네 병원을 글에 담아보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